
임영애 동국대 문화재학과 교수
나무로 만든 높이 55.9㎝의 가섭상(사진)이다. 이 상은 1942년에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Abby Aldrich Rockefeller·1874∼1948)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기증한 것이다. 애비는 정치가이자 부호로 유명한 록펠러 가문의 2세인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 Jr·1874∼1960)의 동갑내기 부인이다. 그는 20세기 유럽 미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동아시아 불교 미술도 주목할 만한 수집품이 많다. 이 가섭상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상은 다행히 기록이 남아 있다. 상의 등에 복장공(腹藏空)이라 불리는 네모난 공간을 마련해 그 안에 관련 기록을 넣어두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통해 이 상이 가섭상이라는 것도, 1700년에 전남 해남 성도암에서 당대 최고의 조각가인 승려 색난(色難·17세기 중반∼18세기 초 활동)이 제작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 당시 가섭상과 함께 석가모니불과 아난 그리고 16구의 나한상, 이렇게 모두 19구의 상을 한꺼번에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해남 성도암에 봉안돼 있던 상이 어떤 연유로 흩어져 미국까지 가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함께 조성했던 16나한상 가운데 1구는 현재 전남 영암 축성암에 봉안돼 있다.
가섭은 아난과 함께 석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으뜸이다. 특히 그는 욕심이 적고, 항상 규율을 엄격하게 잘 지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가섭만 홀로 남았지만, 원래는 아난과 함께 석가모니의 좌우에 서 있었을 것이다. 가섭상은 석가모니를 향해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리고 양손의 손가락을 구부려 서로 맞잡았다. 가섭은 석가모니가 연꽃을 들자 그 뜻을 헤아려 홀로 조용히 미소 지은 ‘염화미소(拈華微笑)’로 유명하다. 말이나 글이 아니어도 마음으로 통한다는 가섭의 미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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