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녀의 벽’ 넘는 여성들

美, 첫 여성 해군참모총장 임박
EU 집행위원장도 정치력 주목

英대관식선 국가의검 전달 눈길
잉글랜드선 남자축구팀 감독도

핀란드 마린 前총리, 파티 구설
伊멜로니, 파시스트 논란 지속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미 해군 참모총장직에 리사 프란체티(59) 해군참모차장을 지명했다. 여성이 군을 통솔하는 참모총장이라는 최고위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상원의 인준이 지연되고 있지만, 임명 절차가 완료되면 미국 역사에 여성이 또 한 줄의 기록을 쓰게 되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1991년 ‘유리천장위원회’를 설치한 지 32년 만이다.

‘유리천장’이란 단어가 등장한 지 약 반세기, 수많은 여성이 서로 다른 사회의 유리천장을 깨고 있다. 지난해 별세한 작가 매릴린 로든이 1978년 이 단어를 처음 사용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성별에 의해 상한(上限) 지어지지 않고,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금녀(禁女)의 구역’ 들어선 여성들 = 7월 31일(현지시간) 미 상원 인준을 기다리고 있는 프란체티 지명자는 주한미해군사령관, 9항모전단장, 해군본부 전투개발참모부장 등을 역임하며 여군으로서 입지전적 경력을 쌓아 올려 왔다. 참모총장으로 취임 시 최초의 여성 국방부 최고위급인 동시에 미군 최고위급 참모회의인 합동참모회의의 첫 여성 상임 멤버가 될 예정이다. 프란체티 지명자가 임관하던 1985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 해군에서 여성의 전투함과 항모 복무는 1994년에서야 허용돼, 그전까지는 사실상 ‘보조’ 업무에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란체티 지명자는 굴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역사를 써왔다. 국방무공훈장, 공로훈장 등 훈장만 10여 개에 달한다.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인 페니 모돈트(50)가 국왕 대관식의 한계를 깨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월 7일 진행된 찰스 3세의 대관식에서 추밀원 의장으로서 ‘국가의 검’을 전달하는 역할을 여성 최초로 맡았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길이 121㎝, 무게 3.6㎏에 달하는 검을 수직으로 쥔 채 대관식이 진행되는 1시간 동안 흔들림 없이 자세를 유지해 대관식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외신들은 영국 여성 최초로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그의 강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입을 모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역시 ‘최초’의 연속이다. EU 최초의 행정부 수반이자, 독일 앙겔라 메르켈 내각에서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국방부 장관직에 올랐다. 2019년 취임 이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병 사태에 맞닥뜨렸지만 안정적으로 위기관리에 나서며 정치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포츠에서도 ‘여풍’…교계 스테인드글라스 천장도 깨져 = 정치권뿐 아니라 문화·스포츠계에서도 여성의 리더십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잉글랜드 남자 프로축구 사상 첫 여자 감독이 된 해나 딩글리(40)가 대표적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4부리그에 해당하는 리그2 포리스트 그린은 지난달 5일 덩컨 퍼거슨 감독을 경질하며 공석이 된 감독직에 딩글리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딩글리는 선임 이후 “‘최초’라는 건 대단한 일이지만, 최초이자 유일이 되고 싶지 않다. 더 많은 여성이 이러한 직책을 맡아야 한다”며 프로축구계가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바티칸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2021년 11월 라파엘라 페트리니 수녀가 바티칸 행정 책임자인 행정부 사무총장에 임명됐고, 1년 뒤인 지난해 11월에는 역시 여성인 라파엘라 줄리아니, 안토넬라 시아로네 알리브란디가 각각 교황청 교회 고고학 위원회 사무총장, 교황청 문화교육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오는 10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에서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기로 해, 가톨릭 문화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전망이다.

◇‘최초’ 타이틀 달았지만 구설 몰리기도 =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지만 오명과 함께 쓸쓸히 물러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세계 최연소 선출직 정상’으로 국제사회를 화려하게 휩쓸었던 산나 마린 전 핀란드 총리는 지난 4월 2일 총선에서 그가 이끌던 사회민주당이 패배하며 당 대표직에서도 사퇴했다. 젊고 평등한 내각을 꾸리고자 했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추진, 코로나19 대책 등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며 성과도 냈지만, 파티 자리에서 격정적으로 춤을 추는 이른바 ‘광란의 파티’ 영상이 유출되며 리더십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73%까지 오르며 대두한 경제 심판론도 극복하지 못했다.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인 조르자 멜로니는 파시스트 논란을 벗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그는 1922년 집권한 베니토 무솔리니 이후 탄생한 100년 만의 극우 지도자다.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이탈리아형제들(FdI)을 창당한 그는 강력한 반(反)난민 정책, 반동성애·낙태 등 여성 정책에서도 그 성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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