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증막 더위 속 구룡마을
습기 못 빠져나가 곰팡이 살림
“구청에 더위 쉼터 요청했지만
무허가 판자촌이라 쉽지 않아”
주거취약계층 182만9000명
작년 2.3% 늘며 다시 증가세
글·사진=전수한·조율 기자
전기장판 3개, 솜이불 5장, 연탄 150개…. 정부가 4년 만에 폭염 위기경보 단계를 가장 높은 ‘심각’ 단계로 격상했던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의 임시 천막 안에는 계절감을 잊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구룡마을의 4지구 주민들은 지난 1월 발생한 대형 화재 탓에 임시 천막에 거주 중이다. 겨울나기용으로 세운 3평 남짓의 천막은 애초 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설치돼 있어 ‘불가마’나 다름없었다. 천막 거주자 이모(79) 씨는 “밤마다 질식하는 듯한 기분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판잣집이나 비닐하우스, 고시원 등에서 거주하는 183만 명 규모의 ‘주거취약계층’이 ‘극한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이들은 한여름에도 습도를 내리려고 연탄불을 피우고, 집안을 뒤덮은 곰팡이를 지워가며 무더위와 사투를 벌인다.
지난겨울 화마로 삶의 터전을 잃었던 구룡마을 천막 거주자들은 여름이 되면서 ‘폭염 난민’이 됐다. 이들은 질식할 것 같은 온·습도를 버티지 못하고 지하철, 인근 공원, 지인의 집 등으로 피난을 떠난다고 했다. 판자촌이 법적으로 무허가인 탓에 전기를 끌어오기도 여의치 않아 간이 에어컨 설치는 엄두도 못 낸다.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공공근로 등으로 연명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어서 냉방용품도 쉽게 사지 못한다. 인근의 간단한 기계를 수리해주고 삯을 받던 이 씨도 요새는 일감이 떨어져 사실상 수입이 없다. 이영만 구룡마을자치회장은 “현재 구룡마을은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며 “구청에 무더위 쉼터라도 긴급하게 설치해 달라고 요청해둔 상태지만 무허가 거주지라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비닐하우스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중학교 1학년생인 김모(13) 군 가족은 10년 전부터 서울 서초구의 비닐하우스 안에 조립식으로 만들어진 집에서 생활 중이다. 올해는 폭염 탓에 지붕을 덮었던 비닐이 녹아버렸다. 장마철엔 집안으로 비가 들이닥쳐 온 집안에 곰팡이가 피었다. 김 군은 버스비를 아끼려고 4㎞ 거리 학교를 자전거로 등교하고 있다. 어머니 정모(54) 씨는 “가족 4명이 선풍기 1대로 버티고 있는데, 비닐하우스 특성상 집이 오히려 바깥보다 습하고 후덥지근해 숨을 못 쉴 지경이다”고 말했다.
이들과 같은 주거취약계층은 지난해 4년 만에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택 이외의 거처(한 개 이상의 방과 부엌, 독립된 출입구 등 주택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거주공간)’ 가구원은 182만9000명으로 2021년 보다 4만1000명(2.3%) 증가했다. 정경래 굿네이버스 대구서부지부장은 “취약계층의 냉방비를 보조하는 ‘에너지 바우처’ 사업을 확대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고, 폭염 예방시설을 확충해 폭염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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