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권호영 기자
그래픽 = 권호영 기자


■ 8년째 방치된 ‘한류 팬 성지’

압구정로데오역 인근에 조성
K-팝 아이돌 새겨진 ‘강남돌’
4세대 없고 해체된 그룹 다수

빅4 기획사도 ‘탈강남’ 선언
“팬들도 강남 외 타지역 찾아”


서울 강남구를 K-팝의 성지로 만들겠다며 야심 차게 준비한 ‘K-스타로드’가 8년째 방치되고 있다. 서울이나 강남을 알리는 홍보물에 여전히 이 거리가 소개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들은 “요즘 인기 있는 그룹을 찾아볼 수 없고, 이미 해체된 그룹들이 많아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K-스타로드’는 서울 강남구가 “한류 팬들을 모으겠다”며 지난 2015년 조성한 거리다. 지하철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2번 출구를 나서면 사람 크기의 ‘강남돌’(강남+아이돌 혹은 인형(Doll)) 17개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각 강남돌에는 K-팝 그룹명과 멤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미쓰에이를 시작으로 2PM, 포미닛, 슈퍼주니어, 샤이니, FT아일랜드, 동방신기, 씨엔블루, 엑소, 소녀시대, AOA, 방탄소년단, B1A4, 빅스, 인피니트, 카라, 블락비 순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현재 그룹 원형을 유지하면서 ‘완전체’ 활동을 하고 있는 그룹은 손에 꼽는다. 걸그룹 미쓰에이, 포미닛, AOA 등은 이미 해체됐다. 소녀시대, B1A4, 빅스 등도 멤버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일 뿐, 그룹 단위 활동은 만나볼 수 없다. 게다가 몇몇 그룹의 멤버는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며 사실상 연예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현재 ‘K-스타로드’는 2∼3세대 K-팝 그룹으로 채워졌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카라 등이 2세대고, 방탄소년단, 엑소, B1A4 등은 3세대로 분류된다. 하지만 활발한 활동으로 현재 K-팝 시장을 이끌고 있는 4세대 그룹은 포함되지 않았다. 블랙핑크, 세븐틴, NCT, 트와이스를 비롯해 스트레이키즈, 에스파, 아이브, 뉴진스 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3일 ‘K-스타로드’에서 만난 일본인 마유코(22)는 “K-팝 그룹을 좋아하고 그들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그래서 이 거리를 찾아오게 됐는데, 평소 좋아하는 르세라핌이나 세븐틴을 볼 수 없어 서운했다”며 “물론 동방신기, 카라도 잘 알지만 그들을 통해 K-팝을 접하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청담동 일대가 더 이상 K-팝 그룹을 배출하는 유명 가요기획사들의 메카가 아니라는 것도 ‘K-스타로드’를 유명무실하게 만든다. 이 거리가 조성될 때만 하더라도 SM엔터테인먼트(SM), JYP엔터테인먼트(JYP), 큐브엔터테인먼트(큐브) 등이 청담 사거리 인근에 포진해 있었다. 이 때문에 각 기획사 앞에는 연습실에서 나오는 아이돌 스타들을 보려는 국내외 팬들이 운집하곤 했다. JYP엔터테인먼트 맞은 편에 자리 잡고 있던 D도넛 가게는 항상 팬들로 인해 만석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세 회사 모두 청담동을 떠났다. SM과 큐브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자리 잡았고, JYP도 15년간 이어진 청담동 시대를 마무리하고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새 사옥을 마련했다. 강남돌이 세워진 17개 그룹을 보면 SM(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엑소, 슈퍼주니어), JYP(2PM, 미쓰에이), 큐브(포미닛) 소속이 절반을 차지한다. 청담동에 터를 잡고 있을 때는 강남구가 추진한 ‘K-스타로드’에 적극 참여했지만 이제는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지금은 강남돌로 제작된 FT아일랜드, 씨엔블루, AOA 등을 배출한 FNC엔터테인먼트만이 청담동을 지키고 있다.

현재 강남구는 ‘K-스타로드’에 새 강남돌을 설치하거나 해체된 그룹의 강남돌을 교체하는 등의 정비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강남구 측은 문화일보에 “현재 상황에서는 교체가 어렵고 공간상의 문제 때문에 추가도 어렵다”면서 “하지만 현재 설치된 강남돌 관리를 위해 현장 점검도 자주 나가고 주 1회 정도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K-스타로드’가 K-팝의 부흥기를 일군 그룹들의 업적을 기리고, 그들을 기억하는 팬들을 끌어모으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태동한 기획형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K-팝이 2∼3세대 그룹들의 활약을 통해 세계화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설치 당시에는 관내에 SM이나 JYP 등 대형 기획사가 많이 있어 협업이 가능했다”면서 “현재는 2∼3세대 한류스타를 기억하고 추억하자는 의미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적잖다”고 덧붙였다.

엄밀히 말해, 강남은 더 이상 K-팝의 산실이 아니다. 서울 삼성동에 위치하던 하이브 사옥은 용산으로 이전했고, SM과 JYP는 각각 성수동, 성내동에 터를 잡았다. YG도 기존 합정 사옥 옆에 신사옥을 짓고 입주했다. 빅 4라 불리는 기획사가 일제히 ‘탈(脫)강남 시대’를 선언한 셈이다. 각 기획사 앞에는 수많은 K-팝 팬들이 모이는 등 관광객이 다양한 곳을 찾는 분산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기존 그룹을 기억하는 측면에서 강남돌을 남겨두더라도 새로운 그룹을 추가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적 홍보를 노린 ‘전시 행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강남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K-팝 상권이 다변화돼 한국을 찾은 K-팝 팬들이 서울의 더욱 다양한 지역을 경험할 기회가 생긴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안진용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