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경매 현장을 찾은 한 미술 애호가가 마음에 드는 작품에 응찰하기 위해 패들(경매현장에서 사용하는 번호표)을 들고 있다.  서울옥션 제공
미술품 경매 현장을 찾은 한 미술 애호가가 마음에 드는 작품에 응찰하기 위해 패들(경매현장에서 사용하는 번호표)을 들고 있다. 서울옥션 제공


■ ‘미술진흥법’ 제정 계기로 다시 갑론을박

소유권 넘긴 미술품 재판매때
작가나 유족에 수익 일부 보상
고흐 · 밀레 가족 ‘궁핍’ 지적에
1920년 프랑스에서 처음 도입

창작자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
화랑가 “음성적 거래 판칠 우려”


‘국민화가’ 이중섭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1950년대 담배를 싸는 속지에 헤어진 가족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담은‘은지화’를 남겼다. 이건희 컬렉션에도 여럿 포함될 만큼 독창적 예술세계를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지만, 사실 은지화는 종이와 캔버스 살 돈도 없어 버려진 담뱃갑 속 은박지를 화폭으로 삼은 가난한 화가의 궁여지책이었다. 이중섭이 세상을 떠난 지금 은지화를 비롯한 작품들은 경매에 나올 때마다 거액에 팔리지만, 자신의 그림으로 가족들이 행복하길 바랐을 이중섭의 뜻과는 달리 가족들이 혜택을 봤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한국 미술시장이 지난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미술진흥법’ 제정을 계기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미술진흥법 최대 쟁점으로 꼽히는 ‘추급권’(재판매 보상 청구권)의 구체적인 시행령 마련을 두고 미술계 구성원 간 시각차가 뚜렷해서다.

작가 등 창작자들은 건강한 미술생태계를 위해 당연한 조치라며 환영하는 분위기인 반면, 화랑이나 옥션 등 유통업계에선 한국 미술시장 성장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추급권은 작가가 소유권을 넘긴 작품이 화랑이나 아트페어 거래, 경매 등 미술진흥법에서 규정하는 ‘미술 서비스업자’를 통해 재판매되는 경우 이익의 일부를 작가 본인이나 유족이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인류사적 걸작을 남긴 빈센트 반 고흐, 장 프랑수아 밀레 같은 작가들의 작품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상승했는데도, 가족들은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1920년 프랑스가 처음 도입한 이후 영국, 독일 등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생전 인지도를 얻지 못한 작가들이 헐값에 소유권을 넘기고, 작가 사후 컬렉터들의 손바뀜을 통해 가격이 치솟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불균형을 바로잡자는 취지다.

국내에서도 추급권은 미술계 해묵은 논쟁 중 하나다.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지난 3월 미술진흥법 법안을 심의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추급권 도입을 두고 “한 20년 전 제가 사무관 때부터 (논란이 됐다)”고 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작가들이 모인 협·단체를 중심으로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1세대 디지털 사진가인 강홍구 작가는 지난달 31일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연합회) 주최로 열린 관련 간담회에서 “추급권은 작가가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 저작권에 대한 최초의 인정이란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화랑이나 경매사 등은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추급권 청구가 가능한 공식적인 미술 거래가 아닌 개인 간 거래, ‘다운계약서’ 작성 같은 음성적 거래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으로 불황에 가까운 조정기를 겪는 한국 미술시장이 더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화랑 관계자는 “미술진흥법 대로면 외국인 작가에 대한 추급권이 인정되지 않고 국내 작가에만 적용되는데, 해외 갤러리가 대거 한국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국내 시장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고 했다. 한 경매사 관계자는 “캘리포니아주를 제외하고 추급권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이나 홍콩으로 작품들이 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술계 구성원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구체적인 징수·분배기관 지정, 합리적인 보상 요율 산정 등 고려사항도 많은 만큼 정부도 추급권에 대해선 4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령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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