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립습니다 - 시인 김춘수(1922∼2004)
저는 2017년 봄까지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에서 포도 농사를 지으며 시를 썼던 시인 농부였습니다.
김춘수 선생님을 처음 뵌 곳은 1991년 강동구 명일동 우성아파트 자택입니다. 이때부터 타계하신 2004년 11월까지 만 13년을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 댁을 오가며 시와 사람을 배웠습니다. 제가 사람을 강조한 것은 선생님은 사람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시만 좋으면 인간성이 나빠도 된다” “좋은 시를 쓰는 사람만 좋아한다”와 같은 잘못된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 좋은 시를 쓴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시던 선생님에게 큰 변화가 왔습니다. 1999년 사모님이 암 선고를 받은 직후입니다. “류 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요. 내 아내가 암이래요. 얼마 전에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그때 발견하지 못했는데 말기래요.” 암 선고를 받은 사모님은 3개월 후 세상을 뜨셨습니다.
선생님의 따스한 인간적 사랑을 표현한 장면 하나를 얘기해 드리고자 합니다. 중환자실에서 사모님 병문안을 하고 나갔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 병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왜 다시 들어가셨을까 궁금했습니다. 누워 있는 사모님을 꼭 안아 주셨습니다. “여보, 사랑하오, 꼭 완쾌해야 하오.”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선생님은 평소 아내에게 사랑 표현은 낯간지러워 못한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을 꼭 안으면서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실 문을 나서시면서 선생님은 “간혹 이렇게 사랑 표현을 하면 좋아요” 하시면서 제게도 부인에게 그렇게 하라 일러주셨습니다. 사모님이 입원 중이던 3개월 동안 저는 선생님이 타 주신 커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집 안 곳곳에서 선생님은 그렇게 초보처럼 혼자 서는 방법을 익히고 계셨습니다.
사모님이 돌아가신 후 선생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동안 시를 안 쓰시다가 3개월 만에 썼다는 ‘달’이라는 작품을 읽어 주셨습니다. “류 군, 매일 보는 저 달이 왜 낯설지 않은지 알고 있나?” “혹시 사모님을 두고 말씀하신 거죠.” 사모님 사후 ‘모든 사물이 아내로 보인다’고 말씀하시며, 사물을 ‘아내의 의미’로 해석하셨습니다. 산보를 하면 나무와 새 그리고 풀에게 사모님 안부를 묻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죽은 아내가 아닌지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셨습니다. 산보 중에 만난 사물로 시를 쓴 시집이 ‘거울 속의 천사’(2001)입니다.
이런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밭의 거친 겉흙을 들추면 곧 부드러운 흙의 속살이 드러납니다. 선생님은 그런 분입니다.
선생님은 프랑스 여행 중 시골 농장에서 열리는 작은 예술행사를 보시고 감명을 받았다고, “류 군은 시도 쓰고 농사도 지으니 포도밭에서 축제를 열면 어떻겠느냐”며 포도밭 예술제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1998년부터 시작했고 포도밭이 없어진 2016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또 선생님께서는 보시던 책과 원고자료 그리고 사용하시던 용품 등을 주시며 향후 요긴하게 쓰라 얘기하셨습니다.
아쉽게도 선생님은 오래전 세상을 뜨셨고, 43년 동안 함께 했던 장현리 포도밭도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포도 농사도, 포도밭 예술제도 모두 끝맺어야 했던 아픔을 뒤로하고 저는 최초로 선생님께 포도나무를 드렸던 진접읍 금곡리 옛 포도밭에 선생님을 위해 작은 집을 지을 예정입니다. 선생님이 보시던 책, 원고지, 포도밭 예술제의 각종 자료와 시를 추억으로 남기겠습니다. 포도나무를 키우며 나무에게 바흐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주고 선생님의 시 얘기를 듣던 지난 세월이 아름답습니다.
가을이 오면 도리뱅뱅이 한 접시 들고 선생님을 찾아봬야겠습니다.
제자 류기봉(시인)
‘그립습니다 · 자랑합니다 · 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