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고싶습니다 - 중창단 친구들
친구가 합창 공연을 올린다며 나를 초대했다. 연합동아리에 들어가 매주 노래 연습을 하러 다니던 친구였다. 작년에는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던 터라 이번에는 꼭 가겠다고 약속했다. 꽃다발도 사 들고 공연장에 갔다. 학생들끼리 준비한 공연이라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고, 다 같이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저 깊이 잠들어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도 이들처럼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 섰던 적이 있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 2년 동안 학교 중창단으로 활동했다. 담임 선생님이 중창단을 모집한다고 말씀하시는 순간 손을 들어 지원한 것이 시작이었다. 무슨 거창한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그랬을 것이다. 입단 과정은 꽤 복잡했다. 노래 테스트를 두 번이나 거쳤는데 두 번째 테스트에서는 부를 노래가 떠오르지 않아 애국가를 불렀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킥킥대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이 나빴지만, 그 친구들은 떨어지고 나는 붙었으니 내가 최종 승자다.
중창단 활동은 매주 모여 노래 연습하기, 대회나 행사 나가기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 연습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친구들과 모여 노는 게 즐거웠다. 그런데 우리의 중창 실력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개인으로는 노래를 잘 부르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되어서 같이 부르면 잘 어우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항상 상대방의 목소리도 들으면서 노래를 부르라고 하셨다.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노래 부르기. 항상 혼자서만 노래를 불렀던 우리는 그게 낯설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목소리를 낮춰 불러 보았다. 그러자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연습을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었다.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 맞춰 가며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매주 모여 즐겁게 노래를 부르던 우리는 첫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대회는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어쨌든 다른 팀들과 실력을 겨루는 자리이고,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 사람들도 많고 가사를 까먹을까 우리는 많이 긴장했다. 맞춰 입은 단복이 반팔이라 안 그래도 긴장해서 서늘한데 더 춥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무대 체질이었다. 무대에 올라가서 아주 훌륭하게 노래를 부르고 내려왔다. 다른 학교 팀들도 모두 노래를 잘 불렀다. 그래서 살짝 기가 죽었다.
긴장되는 결과 발표의 순간, “금상. 서울경인초등학교!” 우리 학교의 이름이 불렸다. 기대를 정말 안 하고 있었기에 우리 모두 깜짝 놀라서 기뻐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소강당이었고, 빨간 천으로 된 의자에 앉아있던 우리는 금상이 발표된 순간 모두 일어나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는 첫해 값진 1등을 하고 다음 해에는 2등을 했다.
좋은 추억이 하나만 있어도 그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의 중창단 활동은 나에게 그런 추억이었다. 아무런 대가가 없어도 다 같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시간들. 서툴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맞춰 노래 불렀던 기억들. 혼자가 아닌 함께였기에 차가웠던 무대 위에서도 따뜻했던 우리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그 추억들을 꺼내 먹는다. 지금은 연락이 끊겨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모르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그때 그 시절을 함께했던 중창단 친구들이 문득 그립다.
신혜연(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그립습니다 · 자랑합니다 · 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