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더욱 발전시켜야 할 제도다. 지방분권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행정·재정 역량과 책임감도 커져야 한다. 그러나 2023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대회를 유치한 전라북도 관계 기관 및 공직자 행태는 이에 정면으로 역행한다는 점에서, 무능·부패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와 지방자치 정신에 위배된다.

우선, 전북도가 잼버리 유치를 구실 삼아 기반 시설(SOC) 예산 확보와 구축에 매달렸단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10일 보도된 2017년 11월 전북도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김대중 도의원은 “잼버리를 하려는 목적은 SOC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말했고, 최병관 전북도 기획조정실장은 “새만금을 속도감 있게 개발하기 위해”라고 맞장구쳤다. 그 즈음 전북도 산하 전북연구원은 “새만금 기반 시설 조기 구축의 명분이 확보됐다”면서 “사업비를 1조 원대로 늘려야 한다”는 자료를 냈다. 이를 근거로 전북도는 2018년 여야를 압박했고, 국회는 ‘세계잼버리지원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잼버리 개최 직접예산은 애초 491억 원에서 대회 직전엔 1130억 원으로 늘었다. 특별법을 근거로 SOC도 밀어붙였다. 새만금 국제공항의 예비 타당성조사가 면제됐고, 2021년에만 공항·항만·도로 건설과 산업단지 조성 명목으로 1조4136억 원을 땄다.

전북도는 잼버리 행사장을 멀쩡한 기존 매립지를 놔두고 갯벌로 정했다. 관광·레저용지 개발이 목표였다. 비용이 불어나자 농업용지로 바꿨다. 농지관리기금 1846억 원으로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낙연 총리는 “농지기금을 써서 부지를 매립한 다음 관광레저 지구로 돌리자”고 거들었다. 예산을 타내기 위한 ‘위장’이었던 셈이다. 매립 공사는 잼버리대회 8개월 전인 지난해 12월에야 끝났다. 결국 2조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는데, 나무 한 그루 없는 진흙탕에서 국제 행사가 열리는 지경을 만들었다. 전북지역 환경단체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 농지관리기금을 내준 건 배임 범죄”라고 지적한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도 지난 3일 “문재인 정부, 전북도, 민주당 정치인들은 잼버리 행사를 빌미 삼아 새만금 신공항 예비 타당성조사를 면제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잼버리 사태는 중앙·지방 정부의 행정력부터 담당 공무원 직무유기 등 총체적 문제를 드러냈다. 감사원 감사는 물론 수사를 통해 전모를 규명해야 할 당위성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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