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가을 동해로 출동한 인천함에서 배희수(맨 오른쪽) 갑판사관사님과 동기들.
1984년 가을 동해로 출동한 인천함에서 배희수(맨 오른쪽) 갑판사관사님과 동기들.


■ 사랑합니다 - 배희수 前 인천함 갑판사관

인연은 이런 건가 싶다. 한눈에 알아봤다. 홀쭉한 허리에 버클이 유난히 튀어 보이는 모습은 기억한 그대로였다. 그도 나를 향해 총총총 다가왔다. “갑판사관님 저 아시겠어요?” 기억을 되찾는 듯 잠시 멈춤이 있은 후 “하하하 기억나네요.” 특유의 쉰 목소리가 다가왔다. 둘이 걸으며 낮술 기울일 곳을 찾는 잠깐의 시간 동안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모여 뿌려지는 듯한 전율마저 느꼈다. 이윽고 시작한 삼겹살에 소주는 삼십여 년 전 추억을 소환하기에 최고의 식사였다.

1984년 오월 나는 ‘빡세다’는 해군 신병훈련을 마치고 동기 8명과 자대배치를 받는다. 자대는 출동 중인 구축함이었다. 함명 인천함은 당시 최정예 전투함으로 동해 출동 중이라 직접 북평항(현재 동해시) 현지로 찾아가야 했다. 장관이었다. 동해를 아우른 긴 방파제에 기대선 구축함 인천함은 웅장함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했다. 설렘과 막연한 걱정부터 시작된 인연이었다. 배희수 대위는 인천함의 갑판사관이었다. ‘짝대기’ 하나 단 신병과 고참 대위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함상수병 근무는 그로부터 18개월을 거치게 된다. 갑판병 지휘관인 대위님도 서울 신길동 출신에 배재고 해사를 거친 서울 사람임을 알게 됐다. 내게는 복학생 선배 격이어서 내심 친근감이 높았다. 두 번의 동해 출동 근무와 진해 모항의 정박 수리 기간을 거쳐 서해 출동까지 일 년 반 바다 생활은 힘든 만큼 기억할 만한 에피소드로 넘치고 넘쳤다.

근무 기간 내가 여리고 서툴고 측은해선지 가끔 사관실로 호출해서 간식도 주고 많이 위해 주었다. 간단한 행정업무도 부탁했다. 사관님의 ‘내무생활 성공사례집’ 작성을 도와 사령관 표창도 받고, 바다 위에서 진행된 함 내 장기자랑에서 내가 만든 갑판부 단막극이 상을 타며 갑판사관님과의 인연은 깊어졌다. 여러 번 출항과 입항을 하며 함상 생활이 몸에 밸쯤 전출 명령으로 배에서 내리면서 사관님과의 즐거운 인연도 멈춰졌다.

전역 후 일상으로 돌아와 졸업과 취업, 결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배희수 대위와의 시간은 내내 진한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다시 극적 인연이 이뤄진다. 회사 업무상 국방일보 관계자를 만나 그의 소식을 알음알음 알게 된 것이다. 수소문 끝에 대위님이 함상 생활을 마치고 삼각지 국방부 합참 등 서울 생활 후 몇 해 전 전역을 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인이 국방일보 독자 명단을 통해 연락처를 구해 준 덕분이었다. 사관과 수병의 삼십오 년 만의 재회는 이렇게 이뤄졌으며 이후 인천함 함장님과 승조원들의 재회도 이어졌다.

배희수 갑판사관님은 중령으로 전역한 후 코이카 비상계획관으로 재직했고, 은퇴 후에도 캄보디아 한글 교육봉사 등 애국적 활동을 계속해오셨다. 예순 중반을 지난 지금도 요양보호 일로 봉사적 삶을 하고 있으니 이것이 진정한 애국이자 군인정신일 테다. 지금은 절친 선배님으로 부르며 서먹함 없이 지난 해군 생활을 이야기하는 동무가 되었다.

이 아름다운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1984년 인천함에서 함께 고생했던 350명 해군 전우들의 건투와 행복을 빌며, 다시 한 번 배희수 갑판사관님의 애국심과 성정에 경의를 표한다.

1963년생 직장인 송태광

‘그립습니다 · 자랑합니다 · 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