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ep Read - 강력범죄와 안전사회

법무·행안부, 검·경 간 유기적 연관성·일관된 정책 부재… 검수완박 뒤 경찰의 범죄대응 역량 약화
英 교정+보호관찰 통합 등 모범사례… 인력·예산 적극 행정으로 재범방지·소년범죄 통합대책 내놔야



서울 신림역·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에 이어 경찰의 특별치안활동 기간 중 발생한 신림동 강간살인 사건은 ‘범죄로부터의 사회방위 실패’를 말해준다. 형사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범죄로부터의 안전 확보이고 그중에서도 효과적인 재범 방지이지만, 최근 강력범죄는 범죄 예방과 처벌, 재범 방지에 이르는 정부의 치안정책과 형사정책이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치안·형사정책의 결함

20명 연쇄 살인사건(2003~2004년)의 유영철은 고등학교 때부터 강간 등 14회 전과가 있었다. 10명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2005~2008년)의 강호순이나 여아 강간상해 사건(2008년)의 조두순, 신림역 칼부림 난동 사건(7월 21일)의 조선 등이 가진 공통점도 재범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치안정책과 형사정책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치안정책은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행정안전부와 경찰이 담당하고, 형사정책은 수사와 형 집행, 보호관찰을 통한 재범 방지를 목표로 법무부와 검찰이 맡는 역할이다. 치안정책과 형사정책은 행안부와 법무부를 중심으로 내각이 수립해 경찰과 검찰이 집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체계인데 우리는 행안부와 법무부의 치안정책과 형사정책 기능이 전무하거나 극히 약화돼 있다.

대신 집행기관인 검찰과 경찰이 독자적으로 정책기능까지 수행하면서 수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검·경의 협력은 고사하고 기관 간 갈등으로 치안정책과 형사정책의 유기적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고 정부 차원의 일관된 정책 기조도 없다. 정책 수립의 기초가 되는 범죄통계조차 낡고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아 정확한 재범 실태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검수완박 부작용

소년형사사법도 시급히 개혁해야 할 과제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2017~2022년 5년간 강력범죄를 저지른 14세 미만 촉법소년이 3만5000명이고, 2021년 기준 보호관찰소년의 재범률이 12%에 이르러 성인(4.5%)보다 훨씬 문제가 심각함을 보여준다. 재범을 양산하는 현행 가정법원 소년부 보호처분의 문제점, 대형 사건 수사에만 관심이 집중된 검찰의 소년사건 수사조직 및 처리 실태, 소년교도소와 보호관찰제도 전반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원점에서 검토해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래 성인범으로 발전해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불안 요소를 제거할 수 없다.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범죄대응 역량이 현저히 약화한 점도 큰 문제다. 2018년 84%이던 경찰의 범인 검거율은 2022년 76%까지 떨어졌다. 사건 처리 기간은 2018년 48일에서 지난해 67.7일로 크게 늘었다. 1차 수사종결권 도입 이후 경찰 부실수사에 따른 검찰 보완수사가 2021년 8만523건에서 2022년 10만3185건으로 28%나 급증하면서 수사부서의 부담이 가중됐다. 지난해 6월 기준 서울의 지구대 파출소 242곳 중 105곳(43.4%)이 정원을 못 채웠다. 서울경찰청 소속 순경 정원은 9535명인데 현재 근무 인원은 4909명에 불과하고 일선 현장에 투입되는 경장과 경사도 정원을 못 채웠다. 경찰 본연의 치안 업무 대신 수사부서에 인력이 대거 투입되다 보니 민생 치안의 공백이 심화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프랑스·영국 사례

프랑스의 경우 효과적인 재범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2007년 재범자에 대한 ‘최하한형 제한’, 2008년 특정중대범죄자 보안유치제도를 도입했다. 살인·강간 등 특정중대범죄를 범하고 15년 이상 구금형을 선고받은 자가 재범 우려가 있을 때엔 형기 만료 후 석방하지 않고 특별폐쇄수용시설에 유치한다. 형기 종료 전 1차로 전문의료진과 정신병리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심사를 받고 2차로 3인의 판사로 구성된 고등법원 특별재판부의 재판을 통해 ‘위험성이 특별히 남아 있고 재범할 위험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이는 때’에는 석방하지 않고 특별수용시설에 유치한다. 유치 기간은 1년이고 재범 위험성이 있으면 무제한 연장이 가능하다. 15~18세 소년범에게도 적용된다.

영국 법무부의 NOMS는 재범 방지를 위해 조직 간 유기적 연관성을 극대화한 모범적 사례다. 교정과 보호관찰을 부분적으로 통합해 범죄자가 재판을 받고 교도소 수감을 거쳐 출소 후 보호관찰 단계까지 한 사람이 일대일 맞춤형으로 담당하면서 교정과 성공적인 사회 복귀를 돕는다. 형사사법의 유기적 연관성은 형벌과 보호관찰의 집행 단계에서 특히 중요하다. 집행의 실효성 측면에서 관계기관 간 범죄정보와 형사사법정보의 원활한 공유도 중요한 과제다.

◇당정 대책의 문제점

정부와 여당은 22일 ‘묻지마 흉악범죄 당정협의회’를 통해 흉악범 전담 교도소 운영, 공공장소 흉기소지죄 및 공중협박죄 신설,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 등을 결정했지만, 근본적 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재범 방지 대책, 그리고 소년형사사법 개혁 문제가 빠졌다.

정확한 실태 파악과 진단 없이 서둘러 처방을 내린 점, 그리고 구체적인 예산의 뒷받침이 없다는 점, 추진 로드맵이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다. 2021년 현재 법무부 산하 국립법무병원(구 공주치료감호소)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원은 15명인데 현원은 5.5명(충원율 36.6%)에 불과하다. 전문의 1명이 환자 103.8명을 담당한다. 마약사범에 대한 치료도 겸하는 국립법무병원의 정신과 전문의 충원 없이는 어떤 정부 대책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정확한 현상 분석과 실태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실 또는 국무총리 산하에 법원을 포함한 관계기관과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 위원회를 구성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있어야 한다. 범죄 예방, 수사, 재판, 형 집행, 보호관찰 등 전 과정을 살펴보고 한정된 예산과 자원을 투입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법무부·검찰·경찰의 조직과 인력운용, 범죄통계, 재범관리, 가정법원 소년재판 등의 실태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수사권 조정에 따른 문제점도 살펴야 한다.

◇국민의 안전을 위한 길

좋은 형사사법제도는 그 시대를 반영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적절한 수단을 갖고 있으며, 신속해야 하고 피해자를 적절히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는 실패한 정부다. 범정부 컨트롤 타워를 설치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 용어 설명

‘NOMS(National Offender Management Service)’는 보호관찰 기능과 교정 기능을 결합해 만든 영국의 국가범죄자관리서비스. 현재는 HM Prison and Probation Service로 개칭.

‘최하한형 제한’은 프랑스에서 중범에 해당하는 범죄를 다시 저지를 경우 법률상 최하한형 이상을 선고하도록 판사의 양형 재량을 제한한 것. 강력범죄에 대한 재범 방지 대책으로 2007년 도입.


■ 세줄 요약

치안·형사정책 결함 : 최근 잇따르는 강력·흉악범죄 발생은 ‘범죄로부터의 사회방위 실패’를 말해줌. 정부 치안정책과 형사정책이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는 것. 검수완박 이후 경찰의 범죄 대응 역량 약화도 한몫.

선진국 사례 : 프랑스는 ‘최하한형 제한’ ‘특정중대범죄자 보안유치제도’를 도입, 효과적인 재범 방지 대책을 수행. 영국 법무부의 NOMS는 재범 방지를 위해 정부 조직 간 유기적 연관성을 극대화한 모범적 사례.

국민 안전을 위해 : 당정의 흉악범죄 대책은 재범 방지나 소년형사사법 개혁 문제가 빠졌다는 점에서 근본적 대책으로 보기 어려워. 인력·예산 적극 행정으로 부처·조직의 유기적 연관성을 극대화한 통합 대책 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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