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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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의 Deep Read - 미·중 전략경쟁과 한국경제

미·중 전략경쟁이 자유로운 무역 방해… 미국 국채시장은 이상 현상, 中은 대차대조표불황 ‘성장 쇼크’
달러화 강세 지속으로 한국 등 글로벌경제 교역 위축… 가까운 장래에 온전한 회복 힘들 수도



필자는 본 지면에서 통화 당국의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 과도한 빚, 인구학적 변화 등을 고려할 때 한국 경제는 1990년대 장기침체에 빠진 일본과 유사한 경제 여건을 공유하고 있다는 논지를 피력했다.(문화일보 3월 30일자 8면 ‘Deep Read’)

이후의 국내외 경제 흐름과 미·중 전략경쟁 등을 고려할 때 한국 경제는 여전히 가까운 장래에 고난의 시기를 온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내수뿐 아니라 해외 수요 부족에 따른 ‘이중고’에 빠질 수도 있다.

◇美 국채시장 흐름

지난 4월 이후 전개된 국내외 경제 흐름은 우리 경제의 현주소와 지향할 방향성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실물경제가 고전하는 가운데 한때 폭락했던 부동산시장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안정을 찾고 가계부채는 다시 늘어나는 모양새다. 대외적으로는 3분기 들어 미·중 경제의 비대칭성이 심화하고 있다.

자유로운 무역의 흐름 속에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중국의 디플레이션 압력에 따른 불균형이 손쉽게 해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은 자유로운 무역에 장애를 일으켜 불균형이 쉽게 치유되기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를 내수뿐 아니라 해외 수요 부족에 따른 ‘이중고’에 빠지게 할 수 있다.

24조 달러 가까운 미 국채시장은 전 세계 달러화 유동성을 제공할 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경제 전망을 반영하는 핵심 금융시장이다. 통상적으론 만기가 길수록 수익률에 만기 할증이 추가돼 수익률 곡선은 우상향한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경기침체를 예측해 만기가 긴 국채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면 ‘수익률 역전’이라는 이상(異常) 현상이 발생한다. 지난해 10월 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세 번째 75bp 정책금리 인상을 단행하기 직전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낮아져 수익률이 역전됐다.

수익률 역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7월 들어 장기 국채수익률이 단기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하는 ‘베어 스티프닝(Bear steepening)’이 일어났다(그림). 가파른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성장, 고용, 물가 등 식을 줄 모르는 경제지표가 투자자들의 낙관적인 전망을 반영한 결과다. 베어 스티프닝은 Fed가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해 상당 기간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 통화정책 수행에 제약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中 성장 쇼크

중국의 2분기 성장 쇼크는 중국 경제에 대한 시각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이를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에 비유해 ‘부채 슈퍼 사이클’, 즉 신용에 기반한 자산시장의 붐-버스트 과정으로 보았다. 중국은 민간 부문의 빚이 지난해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220%나 되는데, 주로 기업 부채(158%)에 기인한다.

기업 빚이 늘어난 것은 국가자본주의의 특성 때문이다. 당이 목표 성장률을 정하고 정부가 이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해외 부문이 부진할 때마다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신용 공급을 확대했다. 수출 호황 때엔 늘어난 빚을 억제했으나 목표 성장률을 너무 높게 잡은 탓에 기업이 빚더미에 앉게 됐다. 성장 하향 추세에서 (GDP 대비) 부채가 늘어나는 건 빚이 늘어날수록 빚의 성장 기여도는 감소하는 것을 뜻한다. 빚은 생산성 향상 대신 과잉투자의 문제를 초래했다.

성장 쇼크가 자산시장의 침체와 함께 소비 대신 예금 증가를 동반했다는 점에서 이를 일본에서 발생했던 ‘대차대조표불황’으로 보는 시각도 설득력 있다. 기업은 금리가 아무리 낮아도 투자하지 않고 번 수입은 빚을 상환하는 데 쓴다. 그 결과, 경제는 통화정책이 무용한 유동성 함정에 빠진다. 일본 정부는 역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정을 풀어 부족한 수요를 메웠다.

지난해 1분기부터 외국인이 중국에서 자금을 회수하고 3분기부터 해외직접투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 데엔 미·중 전략경쟁도 상당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중국은 선부론(先富論)보다 분배를 강조하는 공동부유를 국정 기조로 내세웠지만, 오히려 청년 실업이 증가하는 등 사회경제적으로 부작용을 만들어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중국 경제는 대질주 끝에 마침내 G2로 발돋움했다. 국가자본주의는 고비를 맞을 때마다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제어했다. 이제 성숙단계에 진입한 후 성장 쇼크를 맞은 중국 경제가 빠른 시간 안에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여부는 국가자본주의가 경제주체의 신뢰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우리 경제의 허들

7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팬데믹 이후 가계초과저축분석 및 평가’에 따르면 가계가 빚을 줄여 재무 건전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시장이 안정을 찾으면서 다시 가계 빚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확인된다. 이에 정책금리 인상 종료 후 조만간 인하할 것이란 기대감이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한국 경제가 대차대조표불황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다. 유동성 함정이 아니라면 통화정책은 유효하다. 경제활동이 금리에 탄력적인 것은 분명 고무적이지만, 문제는 다시 늘어나는 빚이다. 이는 경제가 침체에 빠져도 통화 당국이 쉽게 금리를 내리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빚이 많은 가구가 빚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빚을 진 모든 가구가 빚을 줄일 때 ‘구성의 오류’, 즉 대차대조표불황과 같이 국민경제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부채를 무리하게 억제하기보다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경제성장률 이하로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호황을 누리는 중심국 중앙은행이 상당 기간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한다면, 결제통화로서 절대적 위상을 누리는 달러화의 강세는 글로벌 경제의 교역을 위축하게 한다. 한국, 독일, 중국 등 주요 수출국이 어려움을 겪는 데는 강달러라는 공동 요인이 존재한다. 3분기에 들어와 오름세로 돌아선 원·달러 환율은 강달러와 함께 수출시장에서 경쟁하는 위안화·엔화의 약세에 원인이 있다. 미·중 경제의 비대칭이 해소되지 않는 한 원·달러 환율이 내리기는 어렵고, 수입은 감소하겠지만 부진한 수출에 도움이 되기도 어렵다. 대중 수출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경세제민

한국 경제는 가까운 장래에 고난의 시기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어느 때보다 국정 운영자들의 경세제민(Statecraft)의 지혜가 필요하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

■ 용어설명

‘대차대조표불황’은 부채가 늘고 자산가격이 떨어지면서 가계와 기업이 부채 상환에 집중하다 발생하는 경기침체. 부채 디플레이션으로 상환해야 할 빚의 실질가치가 늘어나 부채 오버행 발생.

‘베어 스티프닝’은 인플레이션 기대 확산 등으로 단기금리보다 장기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는 것. 발행량 증가,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장기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투자자들이 장기국채시장을 떠남.


■ 세줄 요약

美 국채시장의 흐름 : 미·중 전략경쟁은 자유로운 무역에 장애를 일으키고 대외의존도 높은 한국 경제는 내수·해외 수요 부족에 따른 ‘이중고’에 빠져. 미 국채시장의 이상 흐름은 우리 통화정책 수행에 제약 요인이 돼.

中 성장 쇼크 : 중국 국가자본주의는 기업 부채를 늘리고 과잉투자를 초래. 중국 성장 쇼크는 자산시장의 침체와 함께 소비 대신 예금 증가를 동반함. 그런 점에서 중 성장 쇼크는 과거 일본의 대차대조표불황과 닮아.

한국경제의 허들 :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걸림돌이며 달러화 강세는 글로벌 경제의 교역을 위축시킴. 미·중 경제의 비대칭이 해소 안 되면 강달러 현상도, 한국의 부진한 수출도 해소 어려워. 경세제민의 지혜가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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