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삭한 오이의 식감과 향긋한 부추의 내음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오이소박이는 그 모양새만큼이나 이름도 알차고 예쁘다. 주재료인 ‘오이’의 속에 ‘소’를 ‘박은’ 것이 이 음식이니 이름에 주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오롯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박이’에 음운 현상이 적용돼 ‘소배기’가 되기도 하니 그 이름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그런데 받침의 유무로 갈리는 ‘속’과 ‘소’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속’은 거죽이나 껍질로 싸인 물체의 안쪽 부분을 뜻하고 ‘소’는 음식의 속에 넣는 여러 가지 재료를 뜻한다. 그러니 속이 더 넓은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적인 용법에서는 속이 소를 대신하기도 한다. 만두의 소를 속이라고 하기도 하고 배추김치를 담글 때 넣는 김칫소를 ‘김칫속’이라고 하는 이도 많다. 뜻과 소리가 모두 비슷하니 둘을 같이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는 ‘속’이 받침이 떨어져 생겨난 것은 아닐까? 받침이 떨어지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멀쩡한 ‘ㄱ’ 받침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 게다가 ‘속’은 길게 발음하는데 ‘소’는 짧으니 그 변화까지 설명해야 한다. 익산의 옛 이름 ‘이리’가 본래 ‘솝리’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아니다. ‘솝’은 오늘날은 안 쓰이지만 17세기까지 ‘속’과 같이 쓰였다. ‘솝’이 ‘속’과 기원이 같다 보니 속을 뜻하는 한자 ‘裡(속 리)’를 지역 이름에 쓴 것이다.
오이와 부추를 재료로 하되 ‘버무리’가 아닌 ‘소박이’를 만든 것은 독특한 칼질 덕분이다. 오이를 네 등분하되 한쪽 끝은 남겼으니 속이 생기고 거기에 소를 넣을 수 있으니 소박이가 된 것이다. 사실 오이소박이의 속은 완전한 속이 아니니 겉과 속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형상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이소박이를 먹을 때 베어 먹기 애매하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속이 아닌 속에 소를 넣을 방법을 고안한 이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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