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연(오른쪽)과 내가 함께 찍은 사진. 이 글이 친구의 일상에 좋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다연(오른쪽)과 내가 함께 찍은 사진. 이 글이 친구의 일상에 좋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 사랑합니다 - 고교 동창 다연

‘사랑한다’는 말에 어울리는 대상은 누구일까? 대개는 가족, 연인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만약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작고 귀여운 아이들을 생각하며 슬며시 웃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친구에게는 사랑이라는 말이 낯간지럽다. 평소 짓궂은 장난을 주고받는 사이에 사랑이라니. 너무 다정해서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나는 종종 ‘우정’이라는 단어가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사랑보다는 조금 더 담백하게 친구 간 나누는 애정을 정의할 단어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신기하게 ‘사랑’ 하면 떠오르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바로 나의 고등학교 동창, 다연이다.

다연이는 17살 때 고등학교 방송반 동아리에서 만났다. 그 안에서 나는 아나운서, 다연이는 엔지니어를 맡고 있었다. 학교 방송부원이 활발하고, 인기가 많다는 생각은 모두 하이틴 드라마가 빚어낸 엉터리 설정이다. 다연이와 나의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이 이를 증명한다. 교내방송을 할 때면 매번 긴장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손에 흥건하게 땀이 났던 우리. 하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서로의 쑥스러움이 위안이 되곤 했다. 아마 이때부터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눈치챘던 것 같다. 선명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가 유달리 가까워진 결정적인 계기는 ‘영상제’라는 방송반 축제 준비 덕분이었을 것이다. 다연이와 나는 영상제에서 영상편집을 담당했다. 누군가 시켜서, 또는 역할이 정해져서 같이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둘 다 영상 제작을 가장 좋아했고, 나름 실력이 있었기에 자연스레 맡게 됐다. 그때를 떠올리면 목소리도 작은 둘이서 항상 옆자리에 앉아 도란도란 의견을 주고받았던 장면이 그려진다. 대부분 “나는 이 부분 이렇게 수정했으면 좋겠는데?”라고 한 명이 말하면 “진짜?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신기하네”라고 다른 한 명이 대답하곤 했다. 같은 생각과 감성을 공유하는 것이 주는 힘은 크다. 영상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매번 성인이 되면 가고 싶은 여행, 좋아하는 음악, 책이나 영화를 통해 받은 느낌 등으로 주제가 번져갔으니 말이다. 함께 나눈 수많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좋은 친구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1학년이 지나가면서 동아리 활동이 아닌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다연이와 나는 여전히 같은 반이 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소홀해지지도 않았다. 2학년 때 나는 학교 대표로 한 경진대회에 참가했었다. ‘대표’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 때문인지 당시 나는 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어하곤 했다. 하루는 다연이가 내 교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이 대회 예선이 끝난 후인지, 본선을 앞두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나를 보며 글썽이던 다연이다. 그 아이는 울먹거리며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생각해 보면 다연이는 항상 그랬다. 내가 시험을 치르거나 중요한 면접이 있을 때, 어딘가 합격을 했을 때, 매번 내 교실 앞에서 복잡한 감정이 얽힌 얼굴과 눈물 맺힌 눈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순수한 마음이어서 나는 그때의 다연이에게 “너의 그 세찬 응원은 어디서 나왔어?”라고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꼭 고맙다고, 그 응원이 지금도 나에게 남아 있다고 전해주고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우리는 첫 해외여행을 같이 다녀왔다. 매년 성탄절이 다가오면 소소하게 선물을 주고받고, 쉬는 날이면 시간을 내서 만난다. 그리고 다연이는 여전히 내가 이런저런 나중에 하고 싶은 것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하면 가만히 듣다가 “뭔가 정민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해준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한다는 말이 있다. 다연이는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친구이다. 나와 아무런 연고 없는 누군가를 계산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는 힘이자, 낯선 이에게도 다정을 베풀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이 글을 마치면 다연이에게 보여주기로 약속했다. 부족하고, 두서없는 내 글에도 분명 그 아이는 좋아해줄 것이다. 어쩌면 사랑도 이런 것이 아닐까. 거창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진심을 전하는 것 말이다. 오늘도 나는 소중한 친구 덕분에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다.

이정민(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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