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가 윤석열 정부의 명운을 가를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총선 전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거취 또한 총선뿐 아니라 향후 정치 구도 변화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마찬가지다. 후보등록일(3월 21∼22일) 기준으로는 이미 총선은 2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제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 발언 하나하나가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고, 이 대표와 야당의 움직임 역시 마찬가지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선거의 계절’이다. 선거는 결국 ‘표 싸움’이다. 내 편이 아니었던 사람을 포섭하고 지지를 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중원을 잡아라’는 둥, ‘중도층 표심 잡기’라는 둥 모두 같은 맥락이다.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혹은 어느 쪽을 지지할지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유권자 ‘집단’, 적어도 큰 선거를 앞두고는 거대 정당들은 이들을 겨냥한 정책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실과 여권, 그리고 민주당의 움직임은 거꾸로인 듯하다. 우리 정치 지형이 양극단의 과격한 목소리가 ‘과대 반영’되는 구조가 돼 버렸기 때문인지, ‘집토끼’ 잡기에만 여념이 없다. ‘민주당 지지율이 제자리걸음인 이유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으로 인한 실망에서 비롯됐다’는 수도권 의원들의 우려 섞인 지적에 한 호남 지역 민주당 의원은 “이재명이 내려가잖아? 그럼 더 망해. 집토끼들이 이제 민주당에 더 기대할 게 없어져, ‘민주당 저것들로 안 된다’ 이러면서 아예 투표장에 안 나와”라고 했다. 당장 8월 첫째 주 갤럽 여론조사에서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48%로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36%)보다 크게 높았지만, 정작 민주당 지지율은 31%로 국민의힘(32%)과 도토리 키 재기 싸움 중이다. 무당층(32%)이 30% 안팎이 된 지는 오래다. 한 야권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에 등 돌린 중도층이 많지만, 이들이 민주당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여권의 상황 역시 비슷하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두고 여권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한 의원은 “정율성도 아니고 김원봉도 아니고 홍범도를 걸고넘어지는 게 정무적으로 맞는 판단인지 여전히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념적으로 거세지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를 두고도 엇갈린 관측이 나온다.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거듭된 강조가 필요하다는 옹호와 ‘지나치게 날이 서 있다’는 평이 함께 있다. 몇 달 전 윤 대통령과 만난 한 여권 인사는 “윤 대통령이 ‘들토끼·산토끼 잡으러 가지 말고 집토끼부터 잡으라’고 했다”고 전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5년 지지율을 분석하며 “코드 인사나 적폐 청산, 검찰 개혁 등 집토끼들에게 어필하는 정책들이 지지율 하락을 촉발한 계기였다”고 분석했다. 극단적인 지지층 결집에 여념이 없는 야당에 맞선 여권의 전략이 ‘집토끼 잡기’ 경쟁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바른 정치도 아니다. 보수의 가치를 분명히 하는 행보와 중도층에 다가가는 국정 운영이 배치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