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정우의 후룩후룩 - 미하일 플레트뇨프의 ‘쇼팽’ 독주회
연주자 : 미하일 플레트뇨프
일시·장소 : 9월 10일·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로그램 : 쇼팽 폴로네즈 1번, 환상곡 바단조, 뱃노래 올림바장조, ‘환상’ 폴로네즈, 6개의 녹턴, 폴로네즈 6번 ‘영웅’
앙코르곡 : 글린카 ‘종달새’, 모슈코프스키 에튀드 작품번호 72번 중 6번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만난 러시아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뇨프는 ‘심마니’ 같았다. 일반인의 눈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땅에서 남다른 감각으로 삼을 캐는 심마니처럼, 거장은 음악 곳곳에 파묻힌 아름다움을 남다른 감각으로 길어 올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심봤다”를 외치지 않는다는 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심마니와 달리 플레트뇨프는 귀 기울여 느낄 사람만 느껴보란 태도로 속삭였다.
독주회 프로그램은 쇼팽으로만 채워졌지만, 전형적인 쇼팽의 음악을 들려주는 법이 없었다. 플레트뇨프의 연주를 통해 쇼팽을 들었다기보단, 쇼팽의 음악을 통해 플레트뇨프 음악을 만났다. 그리고 그가 품은 음악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템포와 강약 조절 모두 정형에서 벗어났지만, 아름답기에 설득력이 있었다. 플레트뇨프는 그만의 눈과 귀로 쇼팽이 남긴 악보에 묻혀 있던 아름다운 음악적 순간을 찾아냈다. 특히 2부 녹턴(야상곡) 여섯 곡은 새로운 작품을 듣는 것과 같은 착각을 줬다. ‘여기서 왜 푹 꺼지지. 템포를 왜 늘이는 걸까. 오 그런데 이런 부분이 있었나. 내가 무슨 곡을 듣고 있는 거지’의 반복이었다. 플레트뇨프는 쇼팽의 음악을 유유히 배회하면서 사색과 밤의 환상이란 야상곡의 핵심을 전해주고 있었다.
매번 예상을 비켜나는 점에서 ‘금쪽이’ 같기도 했다. 마치 관객들에게 “너희들 이 대목에서 이걸 원하지? 그런데 나는 이렇게 칠 거야. 이 음악이 지닌 극대치는 이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강렬한 도입부가 인상적인 폴로네즈 6번 ‘영웅’을 더없이 가볍고 산뜻하게 시작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비장함은 덜어냈지만, 극적 대비는 잊지 않았다. 팔의 힘을 뺀 채 무심히 툭툭 치는데도 강약 조절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모두가 작정하고 세게 치는 구간에서 그는 숨을 돌렸고, 오히려 예상치 못한 다른 곳에서 묵직한 펀치가 나왔다. 강렬함은 강력한 타건이 아닌 강약의 조화에서 오는 상대적 효과임을 여실히 느꼈다. 환상곡 바단조에선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의 독창성은 아쉬움을 상쇄하고 남았다.
글린카 ‘종달새’와 모슈코프스키 에튀드 작품번호 72번 중 6번 등 앙코르 2곡은 한발 더 나아갔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유려하게 건반을 미끄러지기만 하는데, 환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곡을 많이 들어본 사람도, 처음 들어본 사람도 모두 아름다운 순간을 체험했다고 회상할 만한 마법이었다.
속삭이면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사실은 플레트뇨프의 비법 중 하나일지 모른다. 소위 공연장을 뚫고 귀에 꽂히는 ‘듣는 맛’은 덜했지만, 집중도는 높았다. 적절한 페달링으로 음이 퍼져나가는 플레트뇨프의 연주는 작곡가가 남긴 음악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확장하려는 그가 가진 음악의 방향성 같기도 했다. 언드라시 시프가 ‘통역사’를 자처하며 모차르트 같은 작곡가의 목소리를 전해주려 한다면, 플레트뇨프는 작곡가가 남긴 음악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들려주며 느끼게 해주는 예술가였다.
이정우 기자
[제 점수는요]
독창지수 ★★★★★
익숙지수 ★★
환상지수 ★★★★★
만족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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