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미를 위해 뚱뚱한 사람을 그리지 않는다. 과장된 인체 변환을 통해 세상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한다."

‘남미의 피카소’로 불렸던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말이다. 그가 15일(현지 시각)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현지 매체 엘 티엠포 등에 따르면, 보테로는 폐렴 등 지병을 앓다가 모나코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보테로의 딸이 아버지의 부음을 알렸다고 매체들은 전했다.

보테로는 인물과 정물의 풍성한 양감(量感)으로 유명했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은 듯 부풀림으로써 비례에 대한 상식을 뒤집은 희화(戱畵)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태어난 보테로는 삼촌의 권유로 투우사 양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 투우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948년 첫 작품 발표회를 열었고, 1950년대에 미국과 유럽 등에서 독특한 화풍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장의 작품을 패러디한 작품들이 주목을 받았다. 자신의 방식대로 웃음과 애수를 함께 만들어낸 덕분이다.

1970년대부터 조각 활동으로 눈을 돌렸다. 바람둥이 제우스가 유로파를 범하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패러디한 브론즈작품 ‘유로파의 강탈’(1992) 등이 대표작이다. ‘사랑스러운 뚱보’라고 불리는 자신만의 조형 스타일을 구축해 미국과 중남미,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익살스럽게 혓바닥을 살짝 내밀고 있는 풍만한 몸집의 고양이와 기형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말 등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초현실적 미감을 선사했다.

페르난도 보테로가 지난 2017년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AFP 연합뉴스
페르난도 보테로가 지난 2017년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AFP 연합뉴스
보테로는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2003년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자행된 미군의 포로 학대를 생생하게 고발하는 이라크판 ‘게르니카’를 그린 것이 한 사례이다. 당시 보테로는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가 폭력과 만행이 무참하게 짓밟고 지나간 현장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그림을 그렸다. ‘게르니카’를 그린 피카소가 없었더라면 그 누가 게르니카의 학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겠는가"라고 했다.

보테로는 2009년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페르난도 보테로 전’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다. 한국에도 그의 팬이 많지만, 거리가 먼 남미의 작가여서 전시가 자주 열리지 못했다. 근년에 서울의 유진갤러리가 보테로 전을 열어 마니아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줬다. 정유진 유진갤러리 대표는 16일 "다음 주 수요일에 보테로 렉처가 예정돼 있다"라며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에 황망하기 그지없다"라고 애도했다.

한편,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에 고인을 추모했고, 고향인 메데인시는 7일간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장재선 전임기자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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