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 속의 This week
1988년 9월 24일,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올림픽 하이라이트 남자 육상 100m 결승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4관왕 미국의 칼 루이스와 1987년 로마 세계 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캐나다의 벤 존슨 동갑내기 라이벌 간 세기의 대결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탕 ’출발 신호와 함께 먼저 치고 나간 존슨은 치열한 접전이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치며 9초79 세계 신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존슨은 1년 전 자신이 세운 세계 기록 9초83을 0.04초 단축했을 뿐 아니라 대회 2연패를 노리던 루이스를 0.13초 차이로 앞서며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등극했다.
그러나 영광은 삼일천하로 끝났다. 사흘 뒤 금지약물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근육강화제)를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메달을 박탈당했고, 기록도 무효화됐다. 금메달은 루이스에게 넘어갔다. 그는 김포공항에 몰린 취재진을 피해 야반도주하듯 황급히 출국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약물 파문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99년 금지약물을 총괄하는 산하 기관 세계반도핑기구(WADA)를 만들게 됐다. 존슨의 도핑을 잡아낸 한국의 도핑 검사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도핑 테스트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사이클 선수가 흥분제를 사용했다가 경기 중 사망한 것이 계기가 돼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부터 시작됐다. 서울올림픽 당시 40여 개였던 금지 약물은 2021년 기준 800개에 달한다. 도핑 검사를 빠져나가기 위한 수법 또한 갈수록 다양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러시아가 국가 차원에서 도핑 샘플을 조작한 사실이 밝혀져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존슨은 2년간 선수 자격 정지 징계가 끝나고 트랙으로 돌아왔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듬해 출전한 캐나다 몬트리올 육상대회에서 또다시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으로부터 영구 제명됐다.
‘약물 스프린터’로 추락한 존슨은 반도핑 전도사로 변신해 지난 2013년 25년 만에 서울을 방문했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핑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이유는 돈이다. 기록이 좋아야 기업의 후원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부패의 사슬을 끊지 못하면 스포츠는 더 이상 순수할 수 없다. 선수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길 바란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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