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책 피해 감추려 분식 집값 상승 민간보다 4배나 차이 ‘국사범’으로 엄중 처벌해야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단지 경제적 빈부 차이만으로 나뉘지 않는다. 정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가 결정적이다. 정부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국제 신인도를 평가하는 핵심 기준은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통계 수치이다. 인구, 소득, 부동산 가격, 취업률, 실업률 등 기초적인 통계 수치가 틀리기 시작하면 ‘못 믿을 나라’로 규정돼 국가 신인도는 급락하기 마련이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2000년 6월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 12.5%에 달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6%로 축소했다. 그런데 이런 조작은 2009년 EU 회계 실사에서 적발됐다. EU 가입 이후 국가 부채만 늘어나던 그리스는 결국, 2010년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다. IMF는 2013년 아르헨티나를 ‘경제지표 조작국’으로 규정하고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25%대에 이르는 인플레이션을 10.8%로 축소해 고의로 대외 채무를 줄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중국은 사망자 수를 줄여 발표, 국제사회 비난을 샀다. ‘워싱턴포스트’는 위성 사진으로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화장터 차량을 토대로 계산해 사망자가 중국 정부 발표보다 훨씬 많다고 보도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고 있는 러시아도 전사한 병사 수를 줄여서 발표한다는 의혹을 샀다. 그래서 러시아 독립 언론매체는 ‘초과사망(excess death)’ 개념을 기반으로 사망자 수를 추정했다. 초과사망은 특정 이유 때문에 통상 예상되는 수준을 넘는 사망자가 나왔을 때, 그 늘어난 만큼의 사망자 수를 의미한다. 조사팀은 상속기록과 소셜미디어 게시물, 러시아 전역의 묘지 사진 등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해 15∼49세 사이 남성의 상속 사례가 예상보다 2만5000건 많은 것으로 파악했다. 사망자 수가 대략 2만 명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 오클라호마 출신의 코미디언 윌 로저스는 “오클라호마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사람들 덕분에 오클라호마와 캘리포니아 양쪽 주(州)에 사는 주민들의 평균 IQ 지수가 모두 상승했다”고 말했다. 이주한 농부의 IQ가 오클라호마 평균보다 낮고 캘리포니아 평균보다 높다면 가능한 얘기다. 두 주의 전체 평균은 그대로지만 개별 평균은 달라지는 것인데, 교묘한 통계 조작을 말할 때 ‘윌 로저스 효과’라고 한다.
그리스, 아르헨티나, 러시아, 중국처럼 지난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이들 나라보다 훨씬 심한 수준의 통계 조작이 있었다는 감사원 발표는 충격적이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황당한 소득주도성장, 가구당 보유 집이 1 대 1에 가깝기 때문에 주택 공급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택 정책을 펼치다 실제 집값, 소득, 취업률 등이 악화하자 이를 속이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통계 조작이 있었다는 것이 1년여 동안 조사 끝에 감사원이 내린 결론이다. 집값 상승 통계를 민간보다 4분의 1이나 낮게 잡아 놓고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통계와 현실이 다르다 보니 이를 분칠하기 위해 27번이나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악성인 것은 권력을 이용해 통계청과 한국부동산원을 상대로 협박까지 했다는 점이다.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조폭과 다름없다. 원칙을 지키면서 제대로 통계를 냈던 통계청장을 경질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통계청장을 임명했는데, 이 청장은 정확한 통계가 아닌 “좋은 통계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이러니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은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 “최저임금 증가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조작에 앞장섰던 장관, 차관, 청장들의 책임이 크지만, 이렇게 하도록 내몬 최고 책임자인 문 전 대통령의 죄책(罪責)은 엄중하다. 통계 조작은 국가적 법익을 침해하는 국사범(國事犯)과 다름없다.
거짓 통계로 피해를 본 것은 끝모르는 집값 상승에 내몰렸던 서민들이다. 한 푼 두 푼 모아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웠지만, 조작된 통계 탓에 현실은 전혀 달랐다. 이제 검찰은 어떤 정치적 고려와 치우침도 없이 엄정히 수사해 역사의 교훈을 남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