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재정 상황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어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해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세금 수입이 지난해 예산안 편성 당시 전망치보다 59조(兆) 원가량 펑크가 날 것이라고 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또, 기획재정부가 17일 작성한 ‘2023∼2027년 국가채무관리계획’을 보면 연말 기준 국가채무는 1128조8000억 원으로, 1인당 2189만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대규모 재정확대 정책을 편 게 한 원인이라 할 수 있지만, 2018년 35.9%이던 국가채무 비율이 불과 5년 만에 15%p 가까이 급증했다.
주요 7개국(G7) 등 다른 선진국들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에 대폭 늘어난 재정 지출을 감축하면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고 있어 복지 지출 등 미래 지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규모 초과세수가 발생한 지난 2021년과 2022년에도 국가채무가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빠르게 증가했다는 점도 재정 지출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국가가 지고 있는 채무는 현재의 재정 지출에 필요한 재원을 미래세대가 부담하도록 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채무의 결정 과정에서 미래세대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통로는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실의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조세 부담과 재정 지출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은 국가채무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선거와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은 국가 전체의 관점보다는 ‘자신을 지지하고 투표하는 선거구민을 위한 재정 지출은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면서도 그들의 부담은 가능한 한 작게’ 하려는 방향으로 세법을 심의하고 예산을 배정한다. 이러한 정치인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의사결정 결과는 세수 확충에 소극적이지만 재정 지출은 확대되고 이는 결국 국가채무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투표권자인 국민도 자신의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지출을 통한 혜택은 극대화하려고 하는데 이는 경제적 주체로서 어쩌면 당연하다. 예산사업을 편성·집행하는 공무원들도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돈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유인은 그리 높지 않다. 과연 자기 돈이라면 이런 사업을 할지, 예산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를 우리는 일상에서 흔히 목격한다.
이처럼 재정 과정의 참여자들 관점에서 직접적인 조세 부담은 최소화하는 반면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재정준칙의 법제화라는 더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35개국이 재정준칙을 시행하고 있으며, 29개국이 법률이나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아직 이를 도입하지 않는 것은 매우 후진적이다. 미래세대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재원 조달과 재정 지출에 대한 의사결정을 전적으로 재량적인 정책 결정이나 정치적 판단에만 맡기는 것은, 정부 실패와 함께 우리 재정의 미래 대응력을 크게 훼손할 개연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