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 의거 당시 폭탄을 제공한 일서(逸曙) 김홍일(1898.9∼1980.8) 장군 제43주기 추모제가 오는 22일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에서 열린다. 김홍일 장군은 독립유공자이자 전쟁영웅, 정치가로서 독립·호국·민주를 아우르는 큰 업적을 남겼다.
21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평안북도 중앙도민회(회장 윤동진) 주관으로 열리는 기념식에는 미국에 거주하던 고인의 아들 김덕재 씨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양종광 평안북도지사 등이 참석한다.
평북 용천에서 출생한 장군은 1918년 9월 황해도 경신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학생비밀결사 사건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6년 10월 중국 국민혁명군에 입대해 참모, 대대장, 연대장, 상하이 병공창군기처 주임, 19집단군참모처장, 청년군사령부 참모처장 등을 맡아 중일전쟁 등에 참전했다.
1945년 한국광복군 참모장 시절의 김홍일 장군. 국가보훈부 제공
1931년 난징(南京)에서 한국군인회에 가입해 김구 임시정부 주석을 도와 이봉창 의사의 동경 일왕 폭탄 투척 의거(1932년 1월 8일)와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1932년 4월 29일) 등에 사용할 폭탄을 제조해 지원했다.
1944년 임시정부 군무부 차장 겸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장을 맡아 한미 연합으로 국내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육군사관학교 교장, 육군종합학교 총장 등을 지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6일간의 한강방어선 전투를 통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했으며, 육군제1군단장으로 기계전투를 이끌며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는 등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는데 큰 전공을 세웠다.
1951년 중장으로 예편한 이후 주대만 대사, 외무부 장관, 신민당 당수, 광복회장 등을 역임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51년 태극무공훈장,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추모제에 참석하게 된 김 장군의 3남 김덕재씨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항상 고향이 그립고 오고 싶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못 와봤다. 이번 방문을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 묘소에 가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민식 장관은 “김 장군께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이자 국가보훈의 3대 축인 독립·호국·민주의 역사에서 오직 조국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하며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신 분”이라며 “조국 광복을 쟁취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며,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데 공히 기여한 김 장군과 같은 영웅들을 기억하고, 그 숭고한 애국의 큰 뜻을 미래세대에도 온전히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