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여의도 국내정치는 세(勢)와 명분(名分)의 싸움이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그럴듯해도 세력이 없으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결국, 민주주의는 수(數)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력은 있지만 명분이 없으면 목적 달성에 실패한다. 야당 대표의 단식은 세력은 있지만 명분 부족으로 21일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 때 이탈표를 막지 못했다.

국제정치 역시 세와 명분의 대결이다. 국제정치에는 한스 모겐소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주장했던 현실주의(realism) 이론과 국제연맹·유엔의 토대가 된 이상주의(idealism) 이론이 주류를 이뤄 왔다. 세력 확보는 현실주의 접근이며 명분을 얻는 것은 이상주의 사고다. 두 가지 접근이 시너지 효과를 낼 때 국제정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 시베리아 우주기지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과 북한 김정은의 러·북 정상회담은 위험한 군사 야합이다. 각종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는 북한을 상대로 한 러시아의 비밀 군사 거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악용하는 행태다. 대의명분을 설파해 세력을 확보하는 스마트한 외교로 모스크바와 평양 간에 진행될 악마의 거래를 저지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대량파괴무기(WMD)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러·북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세력과 명분 확보에서 의미가 크다. 러시아가 유엔 결의를 명백히 위반하면서 핵·미사일 기술 등을 북한에 제공하는 것은 한국에 대한 간접침략과 다름없고, 한국이 러시아를 준(準)적국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음을 외교 무대에서 천명한 것은 명분 확보에 중요하다. 러시아가 안보리 결의안에 위반되는 협력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으나 정황상 면피성 해명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주권국가를 침공하고 무기와 군수품을 안보리 결의 정면 위반 정권으로부터 지원받는 현실은 자기모순적”이라며 러시아의 부당성을 논리적으로 지적했다. 대북 제재 결의를 준수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의 안보리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 표명으로,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에 반감을 가진 국가들의 세를 규합할 수 있다.

우리는 1990년 수교 이후 줄곧 러시아와의 관계를 발전시켜 왔으며 경제적 실리를 중시하면서 외교적 요구는 자제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한·러 관계 발전에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1950년 스탈린의 불순한 계략과 김일성의 남침야욕 등으로 시작된 6·25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데 러·북의 군사 모험주의 시도는 한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대(對)러시아 외교 레드라인이 설정된 만큼 러·북 간 불법 군사 거래를 저지하기 위한 명분을 확산시키고 국제사회의 동조를 유도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 대러시아 제재 공조를 모색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저농축우라늄을 대체하기 위한 미국과의 협의도 불가피하다. 명분을 축적하고 외교의 깊이와 외연을 전략적으로 확대해야 할 시점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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