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표 여론조사기관이자 비영리단체인 퓨리서치센터는 19일(현지시간) 미국정치를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어두운 시선을 담은 심층보고서를 내놓았다. 7월 10∼16일 미 전역 성인 848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보고서에서 응답자 65%는 현재 미국정치에 대해 느끼는 감정으로 ‘피곤함’, 55%는 ‘분노’를 꼽았다. 정치에 대해 ‘희망적’이거나 ‘흥미’를 느낀다는 답은 각각 10%, 4%였다. 미국사회를 지탱하는 입법·사법·행정 3부 모두 불신을 샀다. 16%만이 연방 정부를 신뢰해 1950년대 조사 시작 이래 최저였고, 의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도 26%에 그쳤다. 대법원도 1980년대 후반 이후 최초로 긍정보다 부정 평가가 많았다. 미국인 4%만이 정치시스템이 매우 잘 작동한다, 23%가 조금 잘 작동한다고 평가한 반면 3명 중 2명꼴인 63%는 미국정치 미래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본산이라는 미국의 정치불신은 내년 대선을 거치며 한층 폭과 깊이를 더할 전망이다. 각각 80세, 77세 고령에 미국인 절반 이상이 싫어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맞대결이 현실화하면 역사상 전례 없는 비호감 선거로 꼽히는 2016년 대선(트럼프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대결)을 넘어선 최악의 비호감 승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앞선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도 미국인 63%가 둘을 비롯해 지금껏 등장한 후보들에 대해 불만족스럽다고 밝혔다. 대선과 별개로 최근 몇 년간 선거에 뛰어드는 정치인 자질이 좋다는 응답이 26%에 불과해 5년 전에 비해 20%포인트 급락했다. 미 정치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가장 많은 31%가 정치인을 꼽았다.
미국인들의 정치불신을 가장 반기는 건 다름 아닌 기성 정치세력들이다. 스티븐 웹스터 인디애나대 교수는 “미국인은 의회에 불만이 많지만 재선 비율은 천문학적”이라며 “우리는 아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경향이 있고 아는 사람은 나이 든 (기존) 정치인”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정치불신에 기반을 둔 분노·증오를 추동해 강력하고 맹목적인 소수 지지세력만으로도 재선 문턱에 도달했다. 퓨리서치센터의 또 다른 연구는 정치불신을 넘어 미국 민주주의의 활력을 회복할 힌트를 준다. 정치인과 소수 극렬 지지세력의 전유물이 된 정치에 관한 관심·참여를 높이는 뻔한 답이 그것이다. 조사 결과 미국인 35%만이 정부·의회 등 시사뉴스를 자주 접하고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는 등 적극 관여한다. 정치 참여도가 높은 이들은 낮은 사람들에 비해 현재 미국사회 문제에 해결책이 있다고 답하는 확률이 20%포인트 높고, 양대 정당 간 차이가 크다고 답할 확률도 25%포인트 높았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렛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궁극적으로 미국 민주주의 미래는 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며 “어떤 지도자도 혼자 민주주의를 살릴 수 없다. 운명은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미국보다 훨씬 극심한 정치 불신·양극화를 체감 중인 한국 유권자들도 귀담을 만한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