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아시안게임 개막식을 계기로 지난 23일 현지에서 이뤄진 외교 이벤트이긴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회담은 여러 측면에서 상당히 파격이다. 시 주석과 한 총리는 양국의 국가 의전 서열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는데도 마주 앉아 30분 정도 회담하고, 개막식 참석 각국 인사 환영오찬 때 시 주석은 한 총리와 함께 입장하며 최고위급 대우를 했다. 특히 한 총리와의 회담에 정치국 상무위원을 2명이나 배석시켜 격을 높였는데,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중 때 ‘혼밥’ ‘기자 폭행’ 등으로 홀대받았던 상황과는 크게 달라졌다. 회담 내용에 있어서도 시 주석이 한 총리에게 먼저 “방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회담 한 번으로 한중관계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진 않겠지만, 최근 들어 등을 돌리고 멀어지던 양국 관계가 돌아서서 마주 보고 한 걸음 가까워지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특히 21세기 황제로 불릴 만큼 중국 국가 권력을 장악한 시 주석의 이런 외교 프로토콜은 중국 정책에 반영될 것이다. 물론 양국 사이에는 수많은 현안이 있고, 당장은 넘기 힘든 높은 장벽도 있다. 한 총리가 공급망 불안정 등을 거론하면서 “규칙·규범에 기반한 성숙한 한중관계”를 언급한 데 대해, 시 주석은 “한국이 중한관계 중시를 정책과 행동에 반영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 총리가 국제 규범에 따른 한중 관계 미래상을 제시하자 시 주석은 ‘중국 입장 존중’을 압박한 셈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도 이와 흡사한 입장을 보였다.

항저우 회담은 새로운 한중관계를 추구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지금까지는 정·경 분리 입장에서 안보·인권 등 불편한 문제는 묻어두었지만, 이젠 국제 규범을 존중하면서 조율해야 한다. 중국에 ‘핵심 이익’이 있는 것처럼, 한국도 북핵 폐기는 양보할 수 없는 의제임을 관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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