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당 정부가 다음 달 200년 넘게 유지해온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영국은 프랑스혁명 이후 부의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1796년 상속세를 처음 도입한 원조(元祖) 국가다. 내년 말 총선을 앞두고 영국에서 상속세 폐지 여론이 높아지자(찬성 48%, 반대 37%), 리시 수낵 총리는 세율 40% 상속세에 대해 “가장 혐오스러운 세금”이라며 단계적 폐지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미 선진국에서 상속세 폐지는 대세가 됐다. 소득세를 낸 재산에 부과하는 이중과세라는 논란과 투자·고용을 줄이는 부작용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15개국에서 상속세가 사라졌다. 캐나다·뉴질랜드·오스트리아는 물론 평등을 중시하는 북유럽의 스웨덴·노르웨이도 상속세를 폐지한 바 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50%)은 최대 주주 할증(20%)까지 고려하면 세계 최고다. 부의 대물림 차단이란 국민 정서에 기대어 2000년 이후 물가와 경제성장을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틀을 유지하고 있다. 급기야 창업자 별세에 따른 상속세 물납으로 정부가 올해 초 넥슨 지주회사인 NXC 지분 29.3%를 보유하는 2대 주주에 오르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상속세 부담으로 알짜 기업이던 락앤락과 쓰리쎄븐, 유니더스 등은 아예 회사를 외국 사모펀드 등에 넘겼다. 기업들 사이에 “한두 번 더 상속세를 내면 모든 기업이 국영기업이 될 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과거에는 탈세가 워낙 흔해 소득세를 사망 시점에 한꺼번에 걷는다는 명목으로 상속세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금은 투명하고 정밀한 과세가 보편화한 만큼 가혹한 상속세는 명분을 잃은 지 오래다. 상속 재산 전체에 과세하는 유산세에서 각자 받은 만큼 과세하는 유산 취득세로 찔끔 바꾸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 원조인 영국마저 없애려는 상속세에 대해 우리도 근본적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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