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이후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원·달러 환율 추이).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1997년 이후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원·달러 환율 추이).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해외투자은행 “엔·달러 환율 150엔 선 돌파 시간문제”
중국 위안화 환율의 절하(가치 하락) 압력도 거세질 듯
당분간 원·달러 환율도 급변동 불가피 전망 많아


‘환율 대전(大戰)의 막이 올랐다!’

미 달러화에 대한 일본 엔화(엔·달러) 환율, 미 달러화에 대한 중국 위안화(위안·달러)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엔·달러, 위안·달러 환율이 요동치면서 원·달러 환율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치솟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27일 장중 한때 1350원 선을 상향 돌파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원·달러 환율이 1350원 대까지 올랐다는 것은 ‘준(準) 위기급 환율’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정상인 상황에서는 발현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통화의 가치가 급격히 하락한 것은 모두 위기 상황에서였다. 1997~1998년 외환위기 시절(위 차트의 맨 왼쪽 동그라미),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가운데 동그라미), 그리고 2개의 위기 상황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지난해(2022년)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시절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근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0월 1400원대를 향해 무섭게 치솟고 있다.

◆미국 경제, ‘볼커 시대의 트라우마’?
현재 세계 경제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3대 경제권을 꼽으라면 당연히 미국 경제, 중국 경제, 일본 경제 등일 것이다.

미국 경제는 ‘생각보다 더 좋다’는 말로 요약된다. 미국 경제가 잇단 금리 인상의 여파로 침체 기미를 보여야 미국의 정책금리인 ‘연방기금금리’ 인하 시기가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미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지고, 주식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텐데 현실은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 ‘아직 저금리에 따른 과열 현상이 충분히 식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는 ‘볼커 시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79년부터 1987년까지 연준 의장을 지낸 볼커는 미국의 정책금리를 20% 넘게 끌어올렸다. 금리 인상 속도로 가공스러울 만큼 빨랐다. ‘철의 볼커(The Iron Volcker)’라고 불렸던 볼커의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사상 최대의 금융 파산과 사상 최대의 공적자금 조성이라는 양대 기록을 세웠다. 미국의 부동산 금융사인 저축대부조합(S&L)이 대거 파산해 국민 세금으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조성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역설적으로 볼커가 미국의 정책금리를 이렇게까지 급격하게 올려야 했던 이유는 그 이전 장기간의 저금리가 낳은 부작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엄청난 고금리를 통해 미국 경제는 큰 고통을 겪었지만, 온몸에 잔뜩 낀 ‘찌꺼기’를 벗겨내는 데 성공했다. 많은 학자들이 “볼커가 찌꺼기를 벗겨내는데 성공하면서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성장과 물가 등 모든 측면에서 뽐낼 만한 ‘초호황기’ 를 맞을 수 있었다는 데 동의한다.

현재 연준도 볼커 시대의 고민과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상을 통한 ‘찌꺼기 제거’는 할 때 밑바닥까지 철저하게 해야지, 어설프게 하다가 중단하면 나중에는 금리를 인상하지도 못하고 인하하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미국의 물가는 연준이 목표로 삼고 있는 2%보다 아직 훨씬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미 연준이 앞으로 한 차례 정도 더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고, 더욱 중요하게 금리 인하를 시작할 시점이 언제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미 연준이 하루라도 빨리 금리를 인하해줬으면 하고 바라고 있지만, 연준이 섣불리 시장에 ‘금리 인하 시그널(신호)’를 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환율은 ‘통화의 교환 비율’이다. 환율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랜덤 워크), 금리가 높은 국가의 통화 가치가 낮은 국가의 통화 가치보다 높다는 상식은 유효하다. 현 상황에서 미국의 정책금리 상단이 5.50%인데, 다른 나라 금리는 이것보다 훨씬 낮다. 심지어 일본은 아직도 제로에 근접한 수준의 기준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미 달러화의 가치가 높은 것(미 달러화 강세)은 사실 상식에 부합한다. 다만, 정도와 폭이 문제일 뿐이다.

◆엔·달러 환율 150엔선 돌파는 ‘시간 문제’?

고전적인 환율론은 한 나라 통화의 가치는 경제가 좋은 나라의 통화의 가치는 높아지고,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한 나라의 통화의 가치는 낮아진다는 상식에 기초하고 있다. 다만, 경제 사정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어떻게 판단할지, 그에 따른 환율이 얼마나 변화할지 등을 예측할 수 있는 정립된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미국 경제에 비해 일본 경제나 중국 경제가 금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이에 따라 환율 전망도 미 달러화의 추가적인 가치 상승(강세), 일본 엔화나 중국 위안화 가치의 하락(약세)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다.

많은 해외투자은행(IB)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엔·달러 환율 150엔선 상향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전망을 내놨다. 현재 엔·달러 환율이 149엔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으니 150엔과 불과 1엔 격차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관리하는 중국 위안화 환율도 궁극적으로는 시장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원·달러 환율은 사실 ‘독립 변수’라기보다는 미 달러화에 대한 일본 엔화나 중국 위안화의 움직임에 영향을 많이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한국 원화의 움직이는 방향은 비슷할 것이라는 뜻이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대에 진입하면 1990년 이후 33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도 엔화 가치의 하락이 꾸준히 진행돼 온 게 사실이지만, 엔·달러 환율이 150엔대에 진입할 경우 국제금융계의 큰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외환 시장의 ‘군집행동(herding behaviour)’이 더욱 심해지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 당국과 시장의 ‘격전’ 펼쳐질 듯

일본 정부는 이미 시장 개입에 나섰다. 스즈키 ?이치 일본 재무상은 지난 26일 각의(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외환시장 동향을 높은 긴장감을 갖고 보고 있다“며 ”과도한 변동에 대해서는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25일 취재진에 ‘엔저’(낮은 엔화 가치)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엔·달러 환율이 150엔대까지 올라가면 일본 정부가 시장에서 미 달러화를 팔고 엔화를 사들이는 ‘실탄 개입’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라가는 환율을 계속 바라만 보고 있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엔화가 150엔대까지 올라가면 우리나라 원화나 중국 위안화 등의 가치 하락 압력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 외환 당국도 ‘구두 개입(口頭 介入)’이나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환시장이 불안해지면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 전반의 변동성이 커진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조해동 기자
조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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