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스터즈’에 등장하는 여섯 걸그룹을 소개하는 장면. 박명성(왼쪽) 대표와 박칼린 연출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남달랐다. 박 대표는 “아이다를 278회 공연했을 때 박 연출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지휘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지휘하다가 앰뷸런스에 실려 가기도 했다”고 답했다. 박 연출은 “박 대표가 저 독종을 믿고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백동현 기자
뮤지컬 ‘시스터즈’에 등장하는 여섯 걸그룹을 소개하는 장면. 박명성(왼쪽) 대표와 박칼린 연출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남달랐다. 박 대표는 “아이다를 278회 공연했을 때 박 연출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지휘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지휘하다가 앰뷸런스에 실려 가기도 했다”고 답했다. 박 연출은 “박 대표가 저 독종을 믿고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백동현 기자


■ 지난달 막 오른 ‘시스터즈’… 박칼린 연출-박명성 제작자

‘저고리 시스터즈’ ‘희자매’ 등
원조 걸그룹 스토리 무대 올려
10년전 구상… “서로를 믿었다”

공연계에 선진 시스템 들여와
90년대 오디션·라이선스 도입
‘아이다’ 8개월 최장공연 기록도

“공연 만드는 자체가 행복한 일
많이 성공 해보고 망해도 봐야”


“1990년대 말 음악감독이라는 용어도 없었고 공연계 종사하는 여성도 보기 힘들었어요. 한국 생활에 너무 지쳐 미국으로 떠나려 할 때 박명성 대표님을 만났죠.”(박칼린 연출)

“박칼린 같은 인재가 미국에 돌아간다고 하니 기가 찼어요. 무작정 붙잡고 여기서 나와 뮤지컬을 하자고 설득했어요.”(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20년 넘는 인연의 ‘투 팍(Two Park)’이 다시 만났다. 이들이 의기투합한 작품은 신시컴퍼니 제작, 박칼린 연출의 창작 뮤지컬 ‘시스터즈’. 지난달 3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개막해 오는 11월 12일까지 공연하는 ‘시스터즈’는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원조 ‘K-팝 걸그룹’을 다룬 쇼 뮤지컬이다.

시작은 박칼린이었다. 그는 약 10년 전부터 이 작품을 구상했다. 구상에서 공연까지 왜 10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을까? “이전엔 국내에서 ‘빅4’ 뮤지컬에만 관심을 가지고 한국 역사를 다룬 뮤지컬엔 관심이 없었어요. 2020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올릴 수 없었죠.” 박 연출이 이런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자 박 대표가 흔쾌히 제안했다. “함께 제작하죠”라고. 이에 박 연출은 ‘걸그룹의 조상’ 중 무려 370팀을 조사했고, 최종적으로 여섯 팀을 선정했다. 1940년대 ‘저고리 시스터즈’, 1950년대 ‘김시스터즈’, 1960년대 ‘이시스터즈’와 윤복희의 ‘코리아 키튼즈’, 1970년대 ‘바니걸스’와 인순이를 배출한 ‘희자매’가 주인공이다. 이 여섯 원조 걸그룹은 친숙한 대중가요 넘버를 부르며 쇼 콘서트를 보는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지난달 22일 서초구 신시컴퍼니에서 함께 만난 이들은 서로에게 공을 돌렸다. “작품에 아무 간섭하지 않고 믿어줘서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박 연출의 말에 박 대표는 “참여형 쇼 뮤지컬이라는 형식이 너무 신선했다. ‘박칼린표’ 무대·언어를 맘껏 펼치는 데 도움이 됐다니 기쁘다”고 답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9년 뮤지컬 ‘시카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뮤지컬 ‘명성황후’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박 연출이 국내 제작환경에 지쳐 미국으로 떠나려 고민하던 순간 박 대표가 ‘시카고’를 함께 하자고 설득했다. 박 대표는 1982년 극단 동인극장에 입단해 연극 ‘여자의 창’ 배우로 첫발을 내디디고 조연출, 무대감독을 거쳐 프로듀서의 길을 택했다. 연극, 뮤지컬을 넘나들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박칼린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로를 ‘독종’이라 평하는 두 사람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로 공연계가 암흑기를 맞았을 때도 열정을 불태웠다. 대극장 뮤지컬을 올리는 곳은 신시컴퍼니가 유일했던 그때, 박 연출은 ‘경험’, 박 대표는 ‘추진력’을 살려 국내 공연계에 선진 제작시스템을 안착시켰다.

시작은 오디션 도입이었다. 국내 공연계에 오디션 없던 시절, 박 연출은 “노래도 안 들어보고 뽑을 순 없다”며 강력하게 오디션을 주장했다. 여성 예술가에게 각박했던 업계에서 그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 박 대표였다. 박 연출은 “박 대표가 편한 분은 아니다. 하지만 정극 정신에 뿌리를 두신 분이라 오디션 도입을 허락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선진 뮤지컬 시스템을 아는 박 연출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시기에 국내 업계가 공연에 대한 정직성·도덕성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지금은 익숙한 ‘맘마미아!’, ‘시카고’ 등 해외 판권을 사서 공연하는 ‘라이선스 공연’도 이들이 정착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표는 “신시가 1998년 공연한 뮤지컬 ‘더 라이프’는 민간 최초의 공식 라이선스 작품이었다”며 “그 전엔 라이선스 공연 개념이 확립되지 않아 다양한 작품을 높은 퀄리티로 선보이기 어려웠다”고 했다. 박 연출은 “박 대표가 라이선스 공연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국내 스타일로 올렸다. (신시가 제작하고) 내가 음악감독을 맡았던 2005년 ‘아이다’의 경우 8개월간 278회 공연했다. 전례 없는 장기 공연이었다. 정말 독한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당시 8개월간 공연한 아이다의 기록은 국내 프로덕션 기준으로 2010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9개월 공연) 전까진 깨지지 않았다. ‘지킬 앤 하이드’가 중간에 배우를 교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다가 여전히 국내 프로덕션 최장 공연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두 사람의 다음 꿈은 한국 이야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 정착이다. 박 대표는 창작 뮤지컬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고 박 연출 역시 국내 1호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부터 꾸준히 새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시스터즈’ 역시 이런 꿈의 일환이다. 박 연출은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창작 뮤지컬이 아직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박 대표는 “많이 성공도 해보고 망해도 봐야 한다. 내가 걸어온 인생이 그랬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렇게 공연을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공연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 스스로에게 즐거움이자 관객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행복 메신저’죠. 우리 작품에 스타가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작품에 출연한 배우가 스타가 되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박명성 대표)

“공연은 나를 제일 즐겁게 하는 것이에요. 이기적인 행복이죠. 하지만 관객들도 함께 행복할 수 있으면 그만한 것이 있을까요?”(박칼린 연출)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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