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보다 믿음 앞세우는 정치 민주당 ‘李 리스크’ 묵살 기류 진실의 정치 심판은 이제 시작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교훈은 시효가 만료된 듯하다. 재봉사는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임금은 옷이 보이지 않았지만, 현명하단 소리를 들으려 훌륭한 옷이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벌거벗은 채 거리로 나선다. 신하들은 임금이 벌거숭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진실이 드러나자 대중은 임금을 조롱했다. 그런 사필귀정은 동화 속 얘기일 뿐이다. 지금 현실 정치에선 신하도 대중도 열광적인 충성을 보인다. 허위로 감싼 리더도 한둘이 아니다. 왜 진실이 정치 편향에 파묻히는 시류가 판칠까.
거짓말을 죄악시한 철학·종교전통을 정치적 현실주의로 바꾼 건 마키아벨리였다. 그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신뢰를 저버리고 파기한 언약은 허다하다”면서 “(간교한) 여우의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군주가 1인자가 됐다. 그것을 은폐할 줄 아는 위선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대중은 알지 못한다. 겉으론 신실하고 정직해 보여서다. “군주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중은 군주의 행동에 대해 결과로써 수단을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 리더의 거짓말은 필수이고, 대중은 이를 따지지 않으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490년 전의 언명이 유효한 현실이다. 캐나다 토론토대 마셀 다네시(언어인류학) 교수는 최근 번역 출간된 ‘거짓말의 기술’에서 “거짓말은 인간의 타고난 능력이라고 추론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생존에 필요한 기능적 측면이 있다는 의미다.
학자들은 이를 ‘마키아벨리적 지능(Machiavellian Intelligence)’이라고 명명했다. 이게 선을 넘으면 파괴적인 행위가 된다. 악의적인 ‘까만 거짓말’, 어둠의 기술이다. 위선, 조작, 왜곡, 사기, 편취, 속임, 농락, 호도, 현혹, 기만, 배반 등이 모두 거짓말에 해당한다. 정치 리더의 거짓말은 대중을 조종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정적에 대한 반감, 분노에 불을 지펴야 한다. 편견과 선입견을 자극할수록 효과는 커진다. 히틀러는 “큰 거짓말을 꾸며내라. 단순 명료하게 포장하라. 계속 말하라. 그러면 결국 사람들이 믿는다”고 했다.
온라인 미디어와 SNS가 주류가 된 세상은 역사상 거짓말로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기에 가장 좋은 시대다.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허위 정보, 가짜뉴스를 퍼뜨릴 수 있다. 19세기 황색 언론은 명함도 못 내민다. 음모론도 최전성기다. 특히, 진입장벽이 낮은 온라인 토크쇼가 위력을 발휘한다. 음모론의 전제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실상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 모든 일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증거보다 믿음에 기대고 있어서 논박이 통하지 않는다. 리더의 말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인지부조화가 일어나지만, 사람들은 이를 해소하려 거짓말쟁이를 버리진 않는다. 대신 믿음을 확증해줄 정보를 찾는다.
다네시 교수가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은 리더는 도널드 트럼프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거짓말쟁이 군주의 화신”이라고 확언했다. 트럼프가 대선 패배 후 기소된 개별 형사사건은 4건이고, 총 91건의 혐의를 받는다. 그가 인정하는 범죄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 적 없다거나, 사실과 다르다거나, 모른다거나, 다른 사람이 했다거나. 그런데도, 트럼프는 “집권 세력의 부당한 시도”라고 주장하면서, 내년 11월 대선에 나설 공화당 주자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사한 상황이라고 해서 거짓말의 기술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단순 대입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알 수밖에 없었던 사람을 모른다고 하고, 불법은 밑에서 한 일이라 하며, 전화로 위증해달라 한 것도 부인하는 것을 여기서 가릴 계제는 아니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식언한 것도 ‘그런 게 정치’라고 하면 끄덕여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성남FC 특혜에 이어 백현동·쌍방울·위증교사 건까지 기소되면 3곳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불구속 결정을 무죄 판결이나 받은 듯이 ‘사법 리스크는 끝났다’는 사람들에게 과연 진실의 정치가 있는지 묻는 것이다. 거짓을 알면서도 대안이 없어서 굽신거리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마키아벨리즘이다. 민주당의 ‘탈(脫)진실’은 끝나지 않았고, 진실의 심판대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