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 이러다 파탄난다 - (上) 유럽국가의 ‘사회적 합의’

스웨덴, 재정따라 금액 자동조정
정권교체 돼도 안정적 연금 보장

獨, 수급연령 상향 등 장기간 설득
정년연장도 추진 소득 공백 메워


공적 연금 개혁은 사회적 갈등을 불러오는 만큼 대부분 국가에서 손대기 껄끄러운 국정 과제로 꼽힌다. 돈 낼 사람은 줄지만 돈 받을 사람은 늘어나 연금 재정이 바닥나는 것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뜨거운 감자’인 연금 개혁에 성공한 선진국들은 ‘사회적 합의와 탈(脫)정치’라는 방법론을 통해 파열음 없이 제도를 고쳤다. 이들 국가는 정치권의 정쟁을 배제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 기구를 통해 오랜 시간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인구 구조와 경제지표에 맞춰 보험료율과 수급액 등을 자동 조절하는 ‘자동조정장치’를 안전판으로 도입해 연금 개혁에서 정치적 변수를 배제한 것도 차별점이다. 이에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정부의 의지 부족으로 매번 좌초한 한국의 연금 개혁 논의에서 이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최근 유럽 각국은 연금 받는 나이를 늦추고 있다. 독일은 현재 65세인 노령연금 수급 연령을 2030년 67세로 올린다. 66세인 정년도 매년 2개월씩 늘려 2030년에 67세로 맞출 계획이다. 스웨덴은 올해부터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을 67세로 늘렸다. 영국도 연금 수급 연령을 현재 66세에서 2028년까지 67세, 2046년까지 68세로 추가 상향할 예정이다. 이들 국가는 정년을 늦추는 노동시장 개혁도 동시 진행해 경제활동인구를 늘려가면서 개인의 소득 공백을 없애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국민적 합의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1998년 연금개혁을 이미 한 차례 마쳤다. ‘덜 내고 더 받는’ 확정급여형(DB)을 ‘낸 만큼 돌려받는’ 명목확정기여형(NDC)으로 바꾼 것이다. 이를 위해 1984년 연금 개혁에 착수하면서 독립적 위원회를 설치했다. 사민당 등 좌우 5개 정당은 정파를 초월한 합의체에서 머리를 맞댔다. 연금 받는 나이를 늦추기 위한 개혁은 2009년 시작됐다. 2013년 연금 연령 조정 특별위원회를 설치한 후 국민의견수렴절차(REMISS)를 거쳐 지난해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국민에게 두 차례 연금 개혁의 당위성을 설득한 시간만 27년이다. 영국도 2007년 연금개혁 당시 진보·보수를 초월해 협력했다. 노년 빈곤 전망과 연금 재정 등 관련 정보를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했다. 연금개혁에 앞서 ‘전국민 연금의 날’을 열어 전국 각지에서 대토론회도 개최했다. 독일도 주무부처 차관, 노사대표, 학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탈정치 기구에서 연금 개혁을 논의했다. 럴프 슈마흐텐베르크 독일 연방노동사회부 차관은 지난 6월 한국공동취재단을 만난 자리에서 “연금 개혁이 성공하려면 국제 기준 등 통계를 통해 국민을 충분히 설득해야 하며, 미래에 연금을 잘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금 개혁에서 정치적 판단을 배제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스웨덴이 1999년 가장 먼저 도입한 자동조정장치는 인구구조, 경제지표, 재정수지 등에 따라 보험료율과 지급액 등 연금 모수(母數)가 자동으로 조정되는 제도다. 연금 재정이 악화되면 연금 지급액을 줄이는 방식이다. 장점은 연금 작동 원리에서 정치 변수를 제외해 연금 제도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과 불신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연금을 규칙적이고 투명하게 개혁할 수 있어 정치·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재정 안정화도 이룰 수 있다. 독일,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4곳이 이러한 조정장치를 운용 중이다. 현재 미도입 OECD 회원국은 한국과 벨기에 등 14곳이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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