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거점 세종학당에서 수강생들이 한옥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세종학당재단 제공
베트남 거점 세종학당에서 수강생들이 한옥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세종학당재단 제공


■ 한글시대 한글혁명 - (下) 한글 세계화

K컬처 더불어 한국어 배움열풍
유학·취업 등 학습목적 다양해

“한국어 배운 것이 인생 전환점”
해외 각국선 토픽응시 크게늘어

세종학당 350곳으로 확대추진
AI 스마트러닝 등 비대면 강화


“한국어를 배운 것이 제 인생의 전환점입니다. 아이돌을 좋아하고 드라마를 즐겨봐 한국어를 새로 배우게 됐고 이로써 새로운 기회와 꿈이 생겼습니다.”(아주지 마람, 튀니지 세종학당)

10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2023 세종학당 한국어 쓰기·말하기 대회’에서 전 세계에서 온 세종학당 수강생들이 유창한 한국어를 뽐냈다. 지난 5월부터 진행된 예선에 4208명의 학생들이 응시했고 우수학습자 168명이 선발돼 국내로 초청됐다. 이들은 한국인이나 다름없는 뛰어난 어휘력과 발음을 구사했다. 가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동료 수강생들의 격려를 받고 “실수가 있었는데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다”며 연설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K-컬처 확산과 함께 전 세계에서 한국어 열풍이 거세다. 해외 각국에서 한국어 강좌가 잇따라 개설되고, 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 명품 브랜드 구찌가 한글을 주제로 한 컬렉션을 내놓고, 한국 먹거리나 한국 소설의 제목을 현지어 대신 한글로 쓴 것들이 더 인기를 끄는 등 문화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K-콘텐츠의 인기가 한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한글 학습이 다시 한국 문화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

한글 학습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 중 하나인 베트남의 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는 2016년 1만6101명에서 지난해 3만8739명으로 늘어났다. 프랑스의 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는 2018년 292명에서 지난해 780명으로 증가했다.

한국어가 전공·과목으로 채택되는 국가도 많아지고 있다. 베트남은 60개 대학에 한국학과 또는 한국어학과를 설치했으며 전공자 수는 2만5000명에 달한다. 프랑스는 2017년부터 수능시험 제2외국어 선택과목으로 한국어를 채택했다. 19곳의 프랑스 대학에 한국어 강좌가 개설됐으며 수강생은 3313명에 달한다. 최근엔 중동 지역에서도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5개 대학에 한국어 수업이 열렸고 2012년 2000여 명에 불과했던 한류동호회원이 지난해 2만4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유학·취업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크게 늘어나 학습 목적이 다양해진 것이 눈에 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재단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한국어 학습 목적은 한국 유학 25.1%,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 23.5%, 한국 및 한국어에 대한 호기심 22.2%, 취업 17.8%였다.

한국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해외 각국에서 수강 대기자까지 발생했다. 3월 기준으로 유럽 지역 내 세종학당의 대기자가 1405명에 달했고, 전 세계 세종학당에서 7840명이 한국어를 수강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문체부는 늘어난 수요를 반영해 2027년까지 세종학당의 수를 35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또 향상된 학습자들의 수준을 반영해 고급 과정을 추가로 개발할 예정이다. 온라인 세종학당의 학습 콘텐츠도 확대하고 메타버스 세종학당 말하기 수업·인공지능(AI) 스마트 러닝 앱 고도화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한국어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디지털 학습도 강화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세종학당이 없는 지역을 우선적으로 선정해 설치하고 프로그램을 다양화해 지속 가능한 한국어 확산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어 위상 달라져… 정규과목 채택 등 영어처럼 현지화 필요”

■ 송향근 전 세종학당재단 이사장


“1980년대까진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관이 설립되면 누가 돈 내고 한국어를 배우느냐는 시선이 있었어요. 이제 자기 돈을 내고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죠.”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세종학당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낸 송향근(사진)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지난 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달라진 한국어 수강 풍경이 체감된다고 했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송 전 이사장은 한국어교원자격심사위원장을 지내며 한국어교원 자격 제도의 정착에 힘썼다. 2011년엔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을 맡아 세종학당 사업을 총괄해 한국어 세계화의 초석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송 전 이사장은 진지한 한국어 수강생들이 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세종학당에서 매년 수강 목적을 조사한다. 2012년엔 한국에 대한 호기심 또는 취미 목적으로 한국어 공부하기를 원했던 분들이 많다. 최근엔 취업, 유학 목적으로 수강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목적이 분명해진 것”이라고 했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진지한 수강생은 전신 마비를 겪고 있음에도 왕복 6시간 거리를 오가며 한국어를 수강한 체코인. “2015년 체코 프라하 세종학당에서 왕복 6시간 거리를 오가며 한국어를 수강한 학생이 있었어요. 목표가 뭐냐 물으니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K-드라마,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한국어 수강에 대한 관심도 날로 커지고 있다. 한국어를 더 널리 알리고 위상을 굳히기 위한 다음 과제는 무엇일까? 송 전 이사장은 한국어의 현지화를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의 입장이 아닌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어를 설명해야 한다. 한국어가 더 많이 확산되려면 한국인에 의한, 한국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현지화가 중요하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단계로 정착할 필요가 있다. 영어가 영국, 미국, 호주 사람에 의해서만 이어졌다면 지금 같은 공용어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는 것을 현지화의 우수 사례로 꼽았다. 그는 “세종학당뿐 아니라 한국 문화를 알리는 기관들이 많다. 기관별로 협력을 강화하고 외국에서 한국어가 교과목으로 채택되도록 돕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한국에 오는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GKS·Global Korea Scholarship) 제도도 확대되고 있는데 좋은 현상이다. 이들이 귀국해 친한파 현지인으로서 한국어 확산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문화일보·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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