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 미·일·중·러 주재 ‘4인 4색’
조, 美정부·의회 등 인맥 탄탄
캠프데이비드 회의 준비 역할
윤, 40년 가까이 日 조야 소통
정부 관계개선 시도때 가교역
정, 영어·중국어 고루 능통해
한덕수·習 면담 등 물밑 조율
이, 북핵·유엔 다자외교 경륜
‘꼼꼼하면서도 장수 기질’ 評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8월 말까지 3개월여에 걸쳐 이뤄진 윤 정부의 초대 4강(미국·중국·일본·러시아) 주재 대사 인선을 놓고 외교가에서는 주요국의 대사 자리에 직업 외교관과 학자 출신을 앉혀 전문성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전임인 문재인 정부가 정치인 또는 측근 기용을 통해 4강 대사 자리를 채웠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직업 외교관들이 4강 대사 자리에 돌아간 것을 두고 야권 성향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적재적소의 인사를 했다”고 평가했다. 윤 정부는 미국과 러시아 주재 대사를 각각 한 차례씩 교체했고 일본과 중국의 경우 초대 대사가 계속해서 직을 이어가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우크라이나 전쟁에다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까지 벌어지며 국제 정세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진 때에 4강 국가를 상대로 국익 수호에 전념하고 있는 한국 대사들의 리더십을 살펴봤다.
◇인맥과 관록 중요한 미·일 주재 대사 = 조현동 주미대사는 지난 4월 워싱턴DC에 부임해 곧바로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준비했다. 4월 26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발표된 워싱턴 선언과 핵협의그룹(NCG) 출범 등 최종 조율 작업에 관여하는 것으로 대사 임기를 개시한 셈이다. 8월 18일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첫 한·미·일 정상회의 준비 과정에서도 조 대사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주미대사의 경우 미 정부와 의회, 학계 등 폭넓고 탄탄한 인맥과 이들을 상대로 한 협상 경험이 필수 자질로 꼽힌다. 조 대사는 한·미 동맹이 60주년을 맞았던 2013년에는 주미대사관 정무공사로 근무하는 등 대미 외교의 최적임자로 이름나 있다.
조 대사에 대한 아그레망(외교사절에 대한 접수국의 사전 동의) 절차가 불과 10일 만에 끝나 그만큼 수준 높은 한·미 동맹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잔잔한 가운데 강한 카리스마를 보이는 조 대사는 외교부 내 신임이 두터워 조직을 이끌어가는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다는 평가다.
윤덕민 주일대사의 경우 40년 가까이 일본 정계와 사회를 들여다보고 경험한 경력이 주일대사 발탁의 주된 배경이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차관급 국립외교원장을 지내 정무 감각도 갖췄다. 그의 유창한 일본어와 넓은 인맥 또한 도쿄(東京) 현지에서 한국 대사직을 수행하는 데 좋은 자질로 여겨진다.
윤 대사는 특히 일본인 특유의 다테마에(建前·겉마음)와 혼네(本音·속마음) 사이에서 핵심을 꿰뚫어 한·일 관계의 성과로 이어가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정권 교체기마다 대일 정책이 오락가락하며 일본 사회에서 크게 신뢰를 잃은 한국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다시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윤 대사의 가교 역할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평소 부드럽고 차분한 스타일이지만 냉철하고 과감한 돌파력을 지녔으며 일본에 할 말이 있으면 해야 한다는 신념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러 주재 대사에겐 전략과 배짱이 필수 = 윤 정부의 외교 정책이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기조로 전개되면서 한·중 관계도 변화하는 흐름을 맞았다.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입지를 축소하고, 이것이 한·중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 짙었다.
이런 상황에서 임명된 정재호 주중대사는 학자 출신으로 영어와 중국어에 고루 능통해 중국은 물론 미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대통령의 대중 정책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사인 만큼 실제 외교 현장에서 이를 구현해 내기에 적임자라는 말도 나온다. 그는 특히 윤 정부의 한·미 동맹 기조가 한·중 관계 경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중국 측에 진정성 있게 전달하면서 한·중 관계의 질적 개선이 이뤄지도록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달 23일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했던 한덕수 국무총리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면담하는 과정에서도 정 대사가 물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 대사는 요즘 한·중·일 정상회의의 연내 개최 등을 목표로 중국 측과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시 주석의 방한이 성사되도록 하는 데에도 외교력을 집중할 예정이다.
지난 7월 러시아에 부임한 이도훈 주러대사는 북핵과 유엔 등 다자 외교에 능통한 정통 외교관이다. 문 정부 시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내 남북 대화와 미·북 대화를 가까이서 지켜봤고 유엔 관련 업무에도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다.
러시아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여전한 상황에서 이 대사의 발탁은 여러 가지 상징성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사 발탁 직전까지 외교부 2차관으로 1년 넘게 근무하던 이 대사를 새 주러대사로 보낸 것은 그만큼 우리 정부가 한·러 관계를 중시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이 대사는 꼼꼼한 전략가이면서도 시원시원한 업무 스타일을 지녔고 어떤 상황에서도 국익 수호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외교관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러시아와 같이 한국과는 다소 결이 다른 외교를 하는 나라를 상대로 협상해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 장수의 기질도 가졌다.
북핵 전문가이자 다자외교 전문가인 이 대사는 지난달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부터 이달 18∼19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방북 등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하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북핵 문제 해결에 기여할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조현동 - 요직 두루 거친 정통외교관… 윤덕민 - 교수·국립외교원장 경력
정재호 - 미·중관계 연구해온 전문가… 이도훈 - 文정부때 북핵 협상 총괄
조현동 주미대사는 대표적인 ‘미국통’ 외교관으로 1985년 외무고시 19회로 외교부에 입부했다. 외교부에서 주로 미국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2000년 3월부터 2003년 2월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한 뒤 서울로 복귀해 외교통상부 시절 북미국 북미3과장으로 일했다. 2012년 11월부터 2016년 3월에는 주미대사관의 공사였다. 2017년 2월부터 7개월여 외교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한 뒤 외부 기관인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한국투자진흥사무소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외교부 제1차관에 임명돼 대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1년여간 근무했다.
윤덕민 주일대사는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학사에 이어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일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 대학원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일 관계와 북한 문제 등을 깊이 연구했고 국립외교원의 전신이었던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안보통일연구부 교수로 근무했다. 박근혜 정부 때였던 지난 2013년 5월 국립외교원장에 임명돼 2017년 7월까지 일했다. 지난해 4월 당선인 신분이던 윤 대통령이 파견한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다.
정재호 주중대사는 윤 대통령의 충암고 동문으로 서울대 국어교육과에서 학사 학위를, 미국 브라운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해 2013년부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산하 미중관계연구센터 소장을 지냈다. 정 대사는 미국에서 중국을 연구한 경험을 토대로 미·중 관계와 관련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주중대사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을 갖췄다는 평가다.
이도훈 주러대사는 부산남고를 나와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85년 외무고시 19회로 외교부에 입부해 유엔과장과 국제기구국 협력관, 북핵외교기획단장, 주세르비아대사, 청와대 외교비서관 등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 당시 북핵 문제를 총괄하는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맡아 남북 관계와 미·북 관계에 깊이 관여했다. 2020년 12월 퇴임한 이 대사는 2021년 8월 윤 대통령의 당시 대선 캠프에 합류했고 2022년 5월 새 정부의 외교부 2차관으로 복귀했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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