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강아지 호와 함께 천안집 인근을 산책하는 모습.
엄마가 강아지 호와 함께 천안집 인근을 산책하는 모습.


■ 사랑합니다 - 천안에서 집을 짓는 엄마·아빠

“엄마는 시골에서는 안 살 거야. 서울이 메인이지.”

퇴직하면 시골로 내려가 살겠다는 아빠는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연고가 천안 도심에 사는 동생 하나뿐이었던 아빠를 가족 모두가 걱정했다. 하지만 친구 부자인 아빠답게 옆집, 뒷집 두루두루 친해져서 매일 같이 산도 가고, 농사 팁도 구하고, 막걸리도 마시며 누구보다 잘 적응해 갔다.

서울집에서는 약속이 없으면 집안일을 하거나 티비를 보는 일과가 대부분인데, 천안집에서는 누구보다 공사다망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가족과 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빠여서 그런지, 나고 자란 시골 환경을 다시 마주하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아빠를 다시 젊게 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옆집 뚝딱이 아저씨네에서 모종을 얻어 오며, 아빠와 마당의 닭장을 구경했다. “닭장이 아니라 무슨 닭 호텔이야.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하시는지 몰라.” 엄마의 말처럼 가축을 어떻게 기르고 관리하는지 전혀 모르는 내가 봐도 닭들이 아주 호강하고 있었다. 천안집에서 아빠가 더욱 반짝반짝 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엄마는 처음에 서울을 더 좋아했다. 엄마는 아빠와 달리 자신만의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막상 만나면 재밌게 어울리지만 친구를 먼저 찾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 엄마에게 천안집은 할 일이 없어 심심하고,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할 것 같은, 집이 아닌 쉼터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엄마도 퇴직 후 주말마다 천안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항상 사부작사부작할 일을 찾아내는 분답게 그곳에서 일을 찾고 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두 번째 삶을 디자인하고 싶은 공간으로, 천안집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다.

어느 날은 “오늘 하루종일 풀 뽑기를 했는데, 비가 와서 그렇게 기분이 좋았어. 비가 오면 풀들이 힘이 빠져서 히잉 하는 느낌으로 노곤노곤해져 있는 것 같아. 그걸 쏙쏙 뽑아버리면 왠지 기분이 좋고, 잘 뽑혀서 재밌어”라며 풀 뽑기도 일종의 명상이라며, 다음에 오면 꼭 같이 뽑자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이즈음부터 시골 생활은 안 맞는다던 엄마가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집단이든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할 때 더 소속감이 들기 마련인데 엄마에게 광덕산에서 할 일이 하나둘씩 생기며 비례해서 소속감이 늘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집 짓기라는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요즘은 그냥 천안 사람이 되었다. 주에 한 번 서울집에 왔다 가도 몇 시간만 머물고 천안으로 다시 돌아간다. 서울집의 비중이 두 분에게 나날이 적어지며 나와 동생은 독립한 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인들이 부모님과 사냐고 물으면 “우리 집은 부모님이 독립해 버렸어”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하는데, 이 말을 할 때 은근하게 기분이 좋다. 왜인지 생각해 보면, 자식이 독립해서 자신의 일을 하고자 할 때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듯이 부모님이 퇴직 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좋고, 나도 나다운 삶을 일궈가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다. 두 분의 모습을 보며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곳, 나를 나답게 해서 힘들어도 재미있는 경험들이 있는 곳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편안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카카오의 브런치스토리에 부모님의 집 짓기에 대해 계속 글을 쓰면서 천안집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자주 가고 싶고, 궁금하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장소들을 많이 찾고, 그 공간들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는 순간들이 삶에서 계속 있기를 바라며 좀 더 설레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도 했다. 모두들 하고 싶은 것이 있는, 나를 키우고 내가 보듬어주고 싶은 공간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박세희(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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