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대처 수단으로 원자력발전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럽이 친환경 에너지를 정의하는 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하고 세계 각국이 소형모듈원전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원자력 기술과 원전 산업은 규제 제도의 개선 없이 발전할 수 없다. 규제는 산업과 기술이 사회에 유해하지 않으면서 유용하게 쓰이도록 관리하는 수단이고, 원전 산업은 그 성격상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기 때문이다. 규제 제도도 사회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특히 경험이 쌓이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규제도 합리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원전 산업과 규제가 시작된 지도 40년이 넘었다. 그간에 경험도 쌓이고 기술도 발전했다.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효율적인 안전규제를 위해 4가지 현안에 대해 원자력안전법 개정이 필요하다.
첫째, 통합인허가 제도의 도입이다. 원전 건설은 건설허가와 운영허가의 두 단계로 이뤄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표준화된 원전을 시리즈로 건설한다. 신고리 3, 4, 5, 6호기, 신한울 1, 2호기, 건설을 재개한 신한울 3, 4호기 모두 다 같은 APR1400 원전이다. APR1400은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원전이기도 하다. 표준설계인가는 표준화된 원전의 건설과 운영허가를 통합해서 허가하도록 고안된 제도다. 표준설계인가를 받고 다시 건설과 운영허가를 받는 것은 비효율적 규제다. 앞으로 건설될 소형모듈원전도 표준화된 원전이다. 통합인허가 제도가 도입돼야 규제도 효율화되고 건설 기간도 단축될 수 있다. 소형모듈원전 도입에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사전인허가검토 제도의 도입이다. 오늘날 원전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소형모듈원전은 세계적으로 80여 종이나 제안될 정도다. 이들 기술이 구현되려면 인허가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개발자는 인허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의 인허가성을 타진하고 싶어 한다. 미국, 캐나다 규제기관이 사전인허가검토 제도를 두고 있는 이유다. 규제가 기술을 관리하더라도 기술 발전의 장벽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도 기술개발 리스크를 줄이고 안전규제에 부합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사전인허가검토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셋째, 계속운전과 주기적 안전성 평가제도의 보완이다. 우리나라는 원전 운영허가 기간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계속운전은 통상 40년의 설계수명 도래 시 안전 점검을 통해 10년의 운전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주기적 안전성 평가는 10년마다 안전점검을 하고 10년의 운전을 허용하는 것이다. 미국은 40년 운영허가를 주고 20년 단위로 운전허가를 갱신해 준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10년 단위로 안전 평가를 하되 운영허가 기간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유럽의 제도를 모두 받아들여서 중복규제가 됐다. 계속운전 심사도 10년 유효기간을 주고, 주기적 안전성 평가도 같은 10년을 주는 것은 불합리하다. 둘 중 하나를 없애든지, 계속운전은 20년을 주고 그 중간에 주기적 안전성 평가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넷째, 성능과 안전 중요도에 기반한 규제다. 이는 안전에 위협이 되는 고장이 없는 원전, 즉 성능 좋은 원전과 그렇지 않은 원전을 구분해서 안전규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즉, 안전에 중요한 것은 중요하게, 덜 중요한 것은 덜 중요하게 관리 감독해 규제 효과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우리는 40년이 넘는 원전 규제 경험과 운영 이력을 가졌다. 중요도 판단과 성능 분석의 기반인 확률론적 안전성 분석기술도 20년 넘게 개발해왔다. 미국은 30년 전에 시작한 규제 제도이고 이를 통해 원전 이용률과 안전성 제고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