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인공지능)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가속하는 저출산과 고령화, 사교육 광풍, SNS가 발신하는 끝 모를 욕망 속에서 한국인은, 또 한국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 9월 4일부터 연재에 들어간 문화일보의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15명이 들여다 본 ‘지금, 한국’을 짧은 소설에 담았다. 매주 월요일 한 편 씩 공개되며, 12월까지 계속될 예정.
(11) 정지돈
저출산 - 가족의 방문

네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더 이상 부모와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너는 부모를 하나의 신으로 이해했다. 과거의 사람들이 믿었던 다종다양한 종교의 신들, 제우스, 알라, 예수, 부처, 아후라 마즈다, 칠성신과 오방대제처럼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한다고 믿고 힘과 권위를 부여한 존재. 사람들은 외부의 적과 무질서에 대항하기 위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믿지 않으면서도 믿음을 실천하고 살았다고, 너는 생각했다.
너의 기억에 하나의 그림이 떠오른다. 암흑 속에서 일그러진 알몸의 사내가 피떡이 된 아이를 집어삼킨다. 자식을 잡아먹는 신을 그렸다는 이 고대의 그림은 너에게 출산과 가족에 기초한 사회를 상징한다. 아이들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부모는 광기에 휩싸인 눈을 희번덕거린다.
너는 부모와 가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네가 사는 통일 한국에선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정자와 난자를 정부에 기증한다. 정부는 기증받은 생식세포를 무작위로 수정해 인공 자궁에 착상시킨다. 생명자원교육부는 인공 자궁에서 출생한 인간들을 평등한 시스템에서 양육하고 교육하고 사회화시킨다. 더 이상 고립되고 폐쇄적인 가족은 없다. 사람들은 독립된 개인이며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에서 평등한 시민이자 국민이 된다.
너는 신체에서 직접 이루어지는 출산 동영상을 보며 공포에 떨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자그마한 자궁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복부의 장기를 압박하고 호르몬 변화로 우울증, 구토, 복통, 무기력함에 시달리던 생물학적 여성의 고통에 몸서리친다. 아카이브는 임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임신은 종의 재생산을 위해 개인의 육체가 임시로 기형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부장적 권위에 사로잡힌 생물학적 남성은 죄책감, 부채감, 책임감에 시달리고 폭력을 휘두른다. 사람들은 임신과 출산을 거부하고 인구는 감소하고 사회는 소멸 위기에 처한다.
너는 문화가 발전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종교가 사라지고 계급이 사라지고 출산이 사라지고 부모가 사라지고 가족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러나 너는 지금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북악산이 보이는 오피스텔의 58층 분리형 원룸에 사는 너는 석 달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2년 동안 다닌 회사가 너에게 해고 통보를 한 이후부터였다.
회사는 네가 속한 팀이 해체되었다는 소식을 예고도 없이 전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 너는 그날 회사 입구를 통과하지 못했다. 회사 동료들은 보안 검색대 앞을 초조하게 오가는 너의 눈길을 피했다. 너는 수위가 전해주는 짐을 받아들고 원룸으로 돌아왔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월세와 학자금, 국가에 납부하는 양육 및 교육에 대한 원리금은 그대로였지만 너는 다른 직장을 구하는 일을 포기했다. 너는 십 년 동안 여덟 개의 직장을 다녔고 모든 회사가 너를 해고했다. 너는 운이 없거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너의 연인은, 전 연인이지만, 둘은 같은 거라고 말했다.
너는 전 연인을 붙잡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에겐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너는 혼자 남았고 분리형 원룸을 나가지 않았다.
그런 너에게 아버지의 전화가 왔다. 처음에 너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2112년 7월 19일 수정, 착상되어서 2113년 5월 10일에 출생한 D7758 맞습니까?” D7758은 너의 태아 시절 코드명이었다. 너는 이 코드명을 언어와 인지 능력이 확립된 7세 언저리까지 사용했다. “네, 맞는데요.” 네가 말하자 전화 속의 목소리는 말했다. “당황하지 말고 들어요. 전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대답을 하지 않는 너에게 소위 아버지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기증한 정자를 추적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도 찾았지만 그녀는 2년 전에 죽었어요. 제 정자로 태어난 아이는 당신을 포함해 세 명입니다. 당신만 괜찮다면 만나고 싶어요.”
너는 소위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것은 불법이었다. 생명자원교육부는 생식세포 기증자가 유전자 전달자를 찾는 일을 엄격히 금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거듭 부탁했다. “우리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상한 운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가족을 회복하고 혈연관계를 복원하는 운동이라고 했다. 너는 무서웠다. 하루에도 수백 개씩 생산되는 생식세포 중 하나를 기증했다는 이유로 너를 속박하고 너에게 감정과 의무를 요구하려는 수작에 소름이 돋았다. 신종 보이스피싱일지도 모른다. 너는 말했다. “나 하나 먹고 살기도 힘들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길 원합니다.”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부탁에 놀랐을 거라고, 조금만 더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매일 전화를 한다. 뭐하냐, 밥은 먹었냐, 반찬은 뭐냐 같은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 너는 엉겁결에 대답한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아버지는 왜 밖에 나가지 않냐, 일은 안 하냐, 사귀는 사람은 없냐 따위의 질문을 한다. 너는 한 번도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질문은 생명자원교육부에서 사회신용지수에 너의 점수를 매기기 위해 조사하는 항목과 일치한다. 너는 그런 걸 말할 의무가 없다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질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형제들을 찾았다고, 다 같이 보자고 말한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준비한 게 있다.” 아버지가 말한다. 그는 어느새 경어를 쓰지 않고 반말을 한다. 아버지와 자식 간에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그는 말한다.
아버지는 너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궁금하지 않냐고 묻는다. 너는 그게 뭔지 모른다. 할…아버지? 아카이브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대…가족 항목이었다. 해당 항목의 자료들이 너무 원시적이라 질색하며 얼른 껐던 기억도 났다.
아버지는 정자와 난자를 추적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았다고 했다. 그들은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있고 자신의 유전자가 유기체를 완성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우리는 대가족을 이룰 거야.” 아버지가 말한다.
집에서 나가지 않은 지 두 달 반 만에 너의 통장 잔고는 바닥을 보인다. 너는 커피를 내리다 눈물을 터뜨린다. 너는 소파 베드에서 일어날 기력이 없다. 너의 사회신용지수는 최저 수준으로 하락해 대출을 할 수도 새로운 직장을 얻는 것도 힘들다. 과거 동료들에게 전화를 하지만 모두 각자 살기 바쁘다.
“위험 인물이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너의 전 연인이 말한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을 보면 신고하라는 광고 못 봤어? 번호 알려줄까?”
전 연인이 공익 광고 링크를 보내준다.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꾀어내는 신종 사기 같은 거라고 전 연인은 말한다.
너는 그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한다. “괜찮으면 커피라도….” 그는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한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빠.”
너는 이제 아버지의 전화를 기다린다. 너는 가족의 방문을 기다린다. 너는 때때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의 모습은 일그러져 있다. 너는 악몽 속에 깨어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가족이 방문한다. 아버지와 두 명의 형제가 방문을 두드린다. 너는 CCTV를 통해 그들이 삼각편대로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아버지는 너와 징그러울 정도로 닮았다. 형제들은 제각각 생겼지만 너와 콧등이 닮거나 입꼬리가 닮았다.
“아빠다.”
아버지가 말한다. 너는 주춤 뒤로 물러선다.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는다. 너는 힘겹게 창가로 다가간다. 북악산 아래 펼쳐진 서울의 중심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인공 자궁 시스템이 출범한 이후 최초로 한해 출생아 수가 30만 명을 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아버지와 형제들이 계속해서 방문을 두드린다. “아빠다.” 너는 검은 배경의 그림을 떠올린다. 자식을 잡아먹는 신. 어둠 속의 아이들. 너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린다.

“가족은 누가 보지 않으면 버리고 싶은 존재”
■ 작가의 말
소설은 생식과 출산을 기계로 해결할 수 있게 된 미래 한국의 모습을 그린다. 국가가 인공 자궁 시스템을 이용해 아이들의 출생을 관리하자 가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출생아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정지돈 작가는 가족을 ‘서로 사랑하고 살해하고 증오하고 애정하고 억압하고 통제하고 집착하는 병적인 관계’로 묘사한다. 작가는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내린 가족에 대한 정의를 가져왔다. “누가 보지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작가는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누가 보지 않으면’이다”라고 했다. “가족의 존재는 가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의무와 중첩되어 있는 듯합니다. 저출산 문제 역시 가부장제를 비롯한 한국의 가족 제도가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소설 속 ‘가족’은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한국 사회의 메타포이기도, 그 자체기도 하다. “가족 관계에서 기인하는 왜곡된 욕망이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고 할까요. 한 번쯤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어떨지요. 아, 별개로 저는 가족을 사랑합니다…….”
■ 정 작가는…
1983년생. 2013년 등단 후 소설 ‘...스크롤!’ ‘인생 연구’ 등을 썼으며 젊은작가상 대상, 문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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