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초 로봇 친화형 빌딩, 최첨단 기술융합의 테스트베드, 세계 유일의 로봇 엘리베이터…. 말만으로는 실감 나지 않는 ‘네이버 1784’, 얼마 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신사옥 방문은 신묘한 경험이었다. SF영화처럼 경이로운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클라우드·자율주행·AI 등과 같은 기술력이 우리의 일상 공간과 의식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느끼기엔 충분했다. 건물명 1784는 빌딩 주소이자, 1차 산업혁명의 시작 연도다. 28층 빌딩의 2층에 올라가자 커피점 앞에 배달로봇 ‘루키’들이 줄지어 움직였다. 100여 대가 빌딩 내 어느 곳이든 심부름을 간다.
이 로봇엔 두뇌가 없다. 모든 지시는 클라우드 프로그램이 내린다. 실물 빌딩을 똑같이 매핑(mapping)한 가상의 3차원 쌍둥이 빌딩(디지털 트윈)을 기반으로 길을 안내해준다. 클라우드와 로봇 사이 통신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독립적인 5G 통신망도 구축됐다. 로봇이 수령인의 얼굴을 알아보는 건 안면인식 기술 덕분이다. 인간들 사이에 섞인 로봇들의 풍경이 낯설지만,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로봇들은 전용 엘리베이터로 층간을 수직 이동한다. 클라우드의 명령과 센서에 의지해 탑승하고 내리는 모습이 로봇 시대의 상징적 장면 같았다.
이 기술은 도시로 확장할 수 있다. 예컨대, 한 지역을 정밀하게 복제한 디지털 트윈을 기반으로 자율주행 이동수단을 운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시 설계, 모니터링과 통제, 부동산 관리, 홍수 예측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시티 조성에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이 필수 인프라가 됐고, 네이버 1784는 시제품인 셈이다. 미래형 신도시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관계자들이 지난 1년 새 이 빌딩을 9번이나 방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중동 순방 기간 중 네이버는 사우디와 1억 달러(약 1345억 원) 규모의 디지털 트윈 구축 사업을 계약했다.
네이버는 향후 5년간 5개 도시에서 사업을 진행한다. 융합과 확장성을 고려하면 다양한 첨단 기술을 중동 지역에 수출하는 교두보다. 지난 9일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도 네이버 1784를 방문했다고 한다. 로봇 길을 만들려던 기술이 이제는 수출 상품이 된 것이다. 디지털 강국에서 발생한 정부 행정 전산망 마비 사태가 더욱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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