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지휘의 뮌헨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지휘의 뮌헨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 정명훈 지휘 뮌헨필과 협연… 피아니스트 임윤찬

꾸밈음 하나까지 명료하게 들려
정적도 ‘꿈꾸는 순간’으로 승화
음악 몰입한 청년의 행복감 전달

공연후 관객이 ‘레고 장미’선물
임윤찬은 다시 악장에게 선물해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뮌헨 필하모닉과의 협연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음악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건반에 실었다. 임윤찬의 전매특허인 또랑또랑한 터치와 폭발적인 카덴차는 물론, 독창적인 해석이 돋보였다. 임윤찬이 더 이상 뛰어난 테크닉을 가진 신예 연주자가 아닌, 깊은 음악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면모를 지닌 세계적 수준의 아티스트라는 점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임윤찬은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객석의 환호를 이끌었다. 아이돌 콘서트 이상의 기대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임윤찬이 자리에 앉자 객석은 고요해졌다. 임윤찬은 곡의 시작을 알리는 5마디에 올곧고 맑은 자신의 소리를 조곤조곤 담아 단번에 좌중을 집중시켰다.

황홀한 카덴차를 들려준 1악장을 지나 2악장에선 고뇌의 정서가 가득했다. 차분하고 고독한 음색 사이로 곡의 특성상 몇 차례나 정적이 찾아왔다. 그런데 침묵은 그 자체로 환상을 꿈꾸는 음악이 됐다. 3악장의 희망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는 임윤찬의 또랑또랑한 음색과 어울렸다. 특히 빠른 속도로 달려나갈 땐 음악에 몰입한 청년의 행복감이 전해졌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그가 사랑으로 희망과 번민을 오가던 시절 쓰인 작품으로 베토벤이 연모의 대상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인지 베토벤의 협주곡 중 가장 온화하고 시적이며 서정적인 정서를 지녔다. 그런데 이날 임윤찬의 연주는 보다 씩씩했고, 어떤 면에선 우직했고, 무엇보다 맑고 순수했다. 고백할까 망설이는 연모의 감정은 아니었다.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사랑의 대상은 누구일까. 앙코르로 좀 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임윤찬은 이날 앙코르로 연주한 리스트 ‘사랑의 꿈’에서 격정적이면서도 사랑에 잠긴 황홀감을 표출했다. 그가 분명하게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은 역시 음악이 아닐까. 이날 곡의 해석도 회의나 번민보단 열정과 행복감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임윤찬의 연주는 그가 가진 음악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분명 닮아 있었다.



그 감정을 한 음 한 음에 실어 또렷하게 표현했다. 꾸밈음 하나까지 명료하고 분명하게 들렸다. 이런 음악이 숨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자신이 구상한 음악을 성심껏 전달했다. 곡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음악의 가능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심마니’ 같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듯한 베테랑 심마니 미하일 플레트뇨프와는 다른 성실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날 무대엔 때아닌 붉은 색 장미꽃 한 송이가 등장했다. 앙코르 연주가 끝나고, 앞자리 관객이 장미 모양의 레고 모형을 임윤찬에게 건넨 것. 임윤찬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그 장미를 뮌헨필의 악장에게 다시 선물했다. 순수함이 깃든 임윤찬의 행동에 관객들은 또다시 환호했다.

2주 전 같은 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도 비교가 됐다. 특이하게도 두 연주자는 서로의 장점을 취한 듯한 인상을 줬다. 안정감있는 해석과 균형 갖춘 완벽한 연주가 강점인 조성진이 지난 12일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협연에서 무대 위에서의 느낌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면, 무대 위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음악을 창의적으로 발견해내는 임윤찬은 이날 연주에선 보다 확고한 해석을 갖고 완벽하게 준비된 연주를 했다는 인상을 줬다.

이날 뮌헨필은 임윤찬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데 치중했다. ‘임윤찬 고(go)’ 방식 때문에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간 긴장감은 다소 떨어졌다. 2부에서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은 고전미와 다이내믹함을 함께 살린 지휘자 정명훈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연주를 마친 뒤 정명훈은 “이 곡은 아마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아는 곡일 거예요”라며 앙코르를 소개했다. ‘아리랑’이었다. ‘음악애’로 시작해 ‘인류애’와 ‘민족애’로 맺기까지 사랑이 넘치는 공연이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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