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정치권에 혁신의 불씨를 댕긴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정치권의 기득권 내려놓기를 강조하며 조만간 당 지도부에 ‘최후통첩’을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사진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백동현 기자,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 혁신의 불씨를 댕긴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정치권의 기득권 내려놓기를 강조하며 조만간 당 지도부에 ‘최후통첩’을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사진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백동현 기자, 연합뉴스


■ Leadership - 취임 36일…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의사 출신 정치 초년생 불구
일거수일투족 보도… 파급력
보궐선거후 침체 분위기 전환

호남출신…보수 이미지 개선
냉기류 흐르는 인사와도 만남
언론과 1일1인터뷰 소통지속

지도부 등 험지출마 압박나서
“일주일 시간줄것” 최후통첩도
당내 변화 견인 여부가 관건


“보복은 못 쓰는 것이여.”

인요한(64)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 축사 중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해 박수를 받았다. 파란 눈의 인 위원장은 자서전 제목처럼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이다. 그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혁신위의 지난 한 달간 여정을 지휘해 왔다. 의사 출신의 정치 초년생인 인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역대 어느 혁신·비대위원장에게서 볼 수 없었던 파급력이란 평가를 받는다. 광주, 부산, 대전, 대구, 제주 등 워낙 행보가 광폭이어서 담당 기자들은 애를 먹고 있다. 이처럼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는 인요한 혁신위임에도 성공 여부에 대한 정치권 견해는 엇갈린다. 다만, 인요한 혁신위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로 침체돼 있던 당 분위기를 바꿔놨다는 분석에는 여의도 정가가 대체로 동의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발언을 인용하며 고강도 혁신을 예고한 인 위원장의 여정을 장면별로 살펴봄으로써 그의 리더십을 분석했다.

#1. 정치의 시작은 광주

인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첫 외부 공식 일정으로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았다. 그는 “유대인이 한 말을 빌리자면 용서는 하되 잊지 말자”며 “앞으로 우리 자식들에게 광주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잘 가르쳐서 중앙 정부와 정치권이 유가족과 후손을 포용하고 (이들이) 어디를 가서든 자랑스럽게 조상과 부모님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 위원장의 광주 방문은 중도층 민심 확대와 호남 서진정책 부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란 인 위원장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외신인터뷰 통역에 나섰다가 전두환 군부로부터 추방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호남 출신의 인 위원장이 갖는 상징성이 커서 그간 구태하게 여겨졌던 보수 진영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20년 8월 당시 김종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5·18묘지’를 찾아 ‘무릎 사죄’로 참배했다. 보수정당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5·18 참배대 앞에서 무릎을 꿇어 ‘5·18 왜곡’에 대해 사죄했다. 이후 호남에서 한때 국민의힘 지지도가 20%까지 오르기도 했다.

#2. 겸손의 리더십

인 위원장은 신당 창당설까지 나오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마음 돌리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4일에는 당 통합을 위해 이 전 대표가 부산에서 진행한 토크콘서트 현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이 전 대표가 자신을 만나려고 먼 걸음을 한 인 위원장을 향해 ‘미스터 린턴(Mr. Linton·인 위원장의 영어 성)’이라 부르며 영어로 말했다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인 위원장은 구한말 미국에서 온 유진 벨 선교사의 증손자로, 4대째 한국에서 선교·의료·교육 활동 등을 해온 공로로 2012년 한국 1호 특별귀화자가 됐다. 인 위원장의 증조부인 유진 벨은 19세기 미국에서 건너와 호남 지역에서 숭실학교, 수피아 여학교 및 광주기독병원을 설립했다. 조부인 윌리엄 린턴은 1919년 전북 군산 만세운동을 이끌었고, 아버지 휴 린턴은 6·25 전쟁 인천상륙작전에 미국 해군 대위로 참전했다.

인 위원장은 최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라도 사투리로 당시 심경을 전했다. “거시기한 것은, 외국인 취급해서 조금 섭섭했어요. 그래도 이 전 대표를 계속 설득할 겁니다.” 평소 DJ를 가장 존경한다고 밝힌 인 위원장은 “나도 DJ처럼 용서하겠다”는 말을 되뇌었다. 그러면서 “난 이 전 대표를 안아주고 싶다”는 말로 국민의힘은 이 전 대표에 대한 포용과 용서에 나서야 한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3. 불편해도 만난다

앞서 인 위원장은 지도부·영남 중진·대통령 측근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권고했다. 이를 두고 지도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인 위원장은 “대통령을 사랑한다면 험지에 나오거나 불출마하라”며 거듭 압박했지만 당내 반응은 ‘무응답’인 상황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혁신위 조기 해산설이 혁신위 내부에서 흘러나오자 “일부 혁신위원의 급발진으로 당의 리더십을 흔들지 말라”고 하는 등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냉기류가 흐르는 상황에서도 인 위원장은 김 대표를 만났다. 인 위원장은 17일 김 대표와 만나기 전 취재진에게 “불필요한 오해가 많았다”며 이번 기회에 소통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이 변화를 원한다”고 강조하며 ‘영남 중진 험지 출마 또는 불출마’ 요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인 위원장은 “고통스러운 쓴소리라도 혁신적으로 계속 건의 드리겠다”고, 김 대표는 “가감 없는 의견을 전달해 달라”는 등의 입장을 주고받았다.

#4. 가끔은 한방 질러본다

인 위원장은 15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혁신안을 소신껏 추진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당시 인 위원장은 “열흘 전쯤 여러 사람을 통해 (윤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에게 직접 연락이 온 건 아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인 위원장은 “돌아서 온 (윤 대통령의) 말씀이 ‘만남은 오해의 소지가 너무 크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을 그냥 소신껏 맡아서 임무를 끝까지 하라. 우리 당과 우리가 필요한 것을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가 왔다”고 했다. ‘윤심’(尹心)을 내세워 험지·불출마 요구에 불응하는 인사들을 상대로 압박에 나선 발언이다.

최근에는 ‘최후통첩’도 날렸다. 인요한 혁신위는 23일 지도부·중진·친윤(친윤석열) 의원들을 향해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일주일 후까지 혁신위가 권고한 불출마·험지 출마에 대한 응답이 없을 경우 권고안을 최고위원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겠다며 압박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인 위원장은 “혁신위 분위기가 좋지 않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는 것”이라며 권고 대상자들을 향한 불만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어 “지금까지 나온 반응에 대해 굉장히 냉담을 갖고 있다”며 “오는 30일 회의에서 아주 강한 메시지가 담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5. 끝없는 언론 인터뷰

인 위원장은 신문과 방송 등을 상대로 일대일 인터뷰를 틈나는 대로 진행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함으로써 혁신위 활동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세우고 있다. 매체도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하는 것도 특징이다. 인 위원장은 “저는 국민을 제일 무서워한다”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지극히 평범한 전라도 촌놈이다. 아무것도 없다”며 “그런데 혁신이 잘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혁신위 활동 기간인 이번 한 달 반이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라고 했다.

인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 중 유머를 툭툭 던지기로도 유명하다. 그는 “A일보는 내가 조만간 고발해야 할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인터뷰 하러 온 여기 남자 기자들을 보니 외모만 보고 뽑는 것 같다”고 웃음을 유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인 위원장은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난 후에는 유 전 의원을 ‘코리안 젠틀맨’이라고 칭했다. 또한 영남 중진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과정에서는 이들을 ‘영남 스타’라고 칭찬했다. 정치권에서는 인 위원장이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정치권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화법을 구사한 것으로, 신선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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