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난한 ‘금쪽이’ 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 (2) 학교는 왜 안전망이 되지 못하나
초교 전문상담사 배치율 26%
중·고등학교의 절반수준 불과
조기발견 중요한데 체계 미흡
정신건강 대응 늦어지며 방관
아이는 결국 ‘문제아’로 낙인
그나마 있는 ‘위 클래스’들도
매뉴얼 없고 인력부족에 허덕
“혼자 한달에 100건씩 담당도”
차상위계층인 김승아(48) 씨는 1년 전 막내딸 지수(10·가명)의 우울증이 의심돼 저소득층 복지센터인 ‘드림스타트’를 통해 병원을 찾았다. 지수는 우울 증상이 동반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현재 드림스타트와 초록우산 지원을 통해 치료 지원을 받고 있지만, 1년 단위의 단기 지원일 뿐이다. 금전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김 씨는 치료 지속에 대한 걱정이 크다. 하지만 지수의 학교 담임 선생님은 “원한다면 위(Wee) 클래스를 통한 상담을 지원해주겠다”고 말할 뿐, 전문 상담 프로그램이 있는 위(Wee) 센터나 전문기관과의 연계를 안내해 주지 않았다. 위 클래스는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상담하고, 필요하면 전문기관과의 연계를 도와주는 학교 내 상담실이다. 김 씨는 “위 클래스를 통해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며 “위 클래스 상담도 신청할 시 단기적으로 진행되고, 이마저도 남은 시간이 아이의 스케줄에 맞지 않으면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위 클래스가 없는 학교도 있다. 초등학생인 주안(11·가명)·하윤(9·가명) 남매는 나란히 ADHD 진단을 받았다. 주안이는 원하는 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쉽게 짜증을 내는 반면, 하윤이는 주변 사람들의 지적이나 괴롭힘마저도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 ‘조용한 ADHD’로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폭력 피해자가 됐다. 엄마 정민선(41) 씨는 남매가 힘들 때마다 찾아갈 공간이 있기를 바랐지만 남매의 학교에는 위 클래스가 없다. 주안이가 화를 내거나 흥분할 때마다, 하윤이가 친구와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학교는 아이들을 교무실에 앉혀두고 엄마에게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오라”고 할 뿐이었다. 정 씨는 “학교에 위 클래스가 없어서 하윤이의 학교폭력과 관련한 정서지원도 학교가 아니라 멀리 있는 위 센터에서 받았다”고 전했다. 학교의 잦은 호출 탓에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한 정 씨는 남매를 위 클래스가 있는 학교로 전학 보내는 것을 고민 중이다.
이처럼 위 클래스가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발견하고 관리하는 ‘1차 안전망’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 클래스가 없는 학교도 전체의 26.8%에 달한다. 교육부는 학생 위기 상담 종합지원 서비스인 ‘위(Wee)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위 클래스가 학교 단위로 1차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위 센터는 지역 단위로 2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8일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위 클래스 구축률은 73.2%에 그친다. 초·중·고별로 나눠보면 초등학교가 59.7%로 가장 낮다. 초등학교 5곳 중 2곳은 위 클래스가 없다는 뜻이다.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문상담교사 배치율은 올해 8월 기준 39.5%에 불과하다. 학교는 초·중등교육법 등에 따라 상담실과 전문상담교사를 갖춰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셈이다. 전문상담교사가 없는 소규모 학교에 순회상담을 하는 전문상담순회교사까지 포함하더라도 46.3%에 그친다. 특히 초등학교는 전문상담교사 배치율이 26.8%로 중학교(52.5%), 고등학교(55.8%)의 절반 수준이다. 전문상담교사가 없는 학교는 전문상담교사·상담심리사 등의 자격증을 갖춘 공무직 신분의 전문상담사가 위 클래스를 운영한다.
인프라 부족은 전문성 하락으로 이어진다. 서울지역 초등학교 상담교사 송모 씨는 “학교 정원이 1300명 정도인데, 혼자 월 90∼100건 정도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며 “담임교사나 학부모의 의뢰만 받기에도 벅차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 아이들을 발견해도 직접 개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기지역 위 클래스 교사 A 씨는 “매뉴얼이 마련돼 있지 않아 상담교사 개인이 일일이 상담방식을 선택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상담교사가 하는 일이나 역량에 대해서 다른 교사들이 제대로 알지 못해 교육의 일관성이 떨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한 위 센터 관계자는 “학교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하거나 심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있으면 학교 차원에서 곧바로 대응해야 하는데 위 클래스가 없는 학교는 이에 대한 경각심 없이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방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송형호 전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생활교육과 정책자문관은 “ADHD, 발달지연 등의 경우 초등학교에 다니는 때가 치료의 골든타임”이라며 “정신건강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특히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위 클래스 설치율을 높이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돌림 당할까’ 숨기기 급급… ‘아픔’ 치료 못한 채 성장
■ 조기진료 어려운 까닭
정신과 진료 기록 남을까 부담
부모들 완강한 거부로 치료회피
만성·중증화 돼 완치 멀어져
“위(Wee) 클래스 가는 게 어려웠어요. 성인이 되고 나서야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미리 치료를 받았다면 제 조현병도 일찍 고칠 수 있었을까요?”
인천 지역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최모(25) 씨는 10년 전쯤인 중학생 때부터 환청을 동반한 조현병 증상을 앓았다. 좋아하는 친구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이 들려오곤 했다. 하루 3∼4번꼴이던 환청은 점점 잦아졌다. 고등학교 진학 후엔 시시때때로 들렸다. 급기야 환청에 대답하기 시작하면서 따돌림까지 당했다.
하지만 소아청소년정신과에 찾아가지는 못했다. 자식에게 정신과 진료 기록을 남길 수 없다던 부모님의 반대, 그리고 위 클래스를 오가게 될 때 친구들의 시선 때문이다. 선생님들조차 최 씨의 증상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다고 한다. 최 씨는 2년 전, 뒤늦게 조현병 진단을 받고 정신병동에 입원해 정식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최 씨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증상 때문에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산 게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며 “정신 건강 문제는 최대한 빨리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한데, 정말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최 씨의 말처럼 정신 건강 문제는 조기 발견과 적기 치료, 꾸준한 관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이들을 돕는 시스템 부재는 정신 건강 문제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의 60%가 성인이 돼서도 증상을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경기권의 한 위 클래스 담당교사는 “부모들이 완강하게 ‘우리 아이는 괜찮다’는 식으로 덮어두고 상담도 치료도 거부해 필요한 조치가 미뤄지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서울 지역 한 위 센터 관계자도 “‘상담받으러 간다’는 사실 자체로 따돌림을 당할 것이 걱정돼 위 센터를 방문하려고 하지 않는 중증 학생들도 있다”고 전했다.
지역 주민에게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는 “아동·청소년의 정신질환을 조기에 파악하지 못하고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정신질환이 만성·중증화돼 완치를 어렵게 만든다”며 “학교, 부모가 최대한 빨리 아이의 이상 증상을 파악하고 치료 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관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율·권승현·전수한 기자 hanihan@munhwa.com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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