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도서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후 귀국한 안톤 허(왼쪽) 번역가와 정보라(오른쪽) 작가.
전미도서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후 귀국한 안톤 허(왼쪽) 번역가와 정보라(오른쪽) 작가.


작가들 무대점거 반전 시위도
내년 ‘그녀를 만나다’ 번역출간


글·사진 =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정보라 작가와 안톤 허 번역가. ‘저주토끼(Cursed Bunny)’로 영국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이들은 최근 미국 최고 권위의 전미 도서상 최종후보에도 올랐다. 수상에 이르진 못했지만 한국 소설가와 번역가가 올린 뜻깊은 성과다. 미국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고 귀국한 이들을 지난 17일 만나 그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정 작가는 ‘저주토끼’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데 대해 “주술이나 민간신앙은 어느 언어·문화권에나 존재하고, 주술과 마법이 등장하는 민담이나 옛이야기는 모든 사람에게 익숙하다. 또 현대사회의 복잡성, 자본주의 병폐, 소외와 차별 문제도 거의 모든 사회,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안”이라며 “이런 익숙한 틀 안에 낯설고 기이한 사건이 벌어지는 구조가 부담 없고 재미있게 느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안톤 허는 “시상식에서 우리는 하셰트 출판사 테이블에 앉았는데 주변에 미국 5대 출판사인 펭귄 랜덤하우스, 하퍼콜린스, 사이먼 앤드 슈스터, 맥밀런이 있었다. 따져보니 그 다섯 곳과 모두 일해봤더라”라며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이번 전미도서상 시상식에선 최종 후보에 오른 작가와 번역가 20명이 무대에 올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해 이슈가 됐다. 사전에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몇몇 기업이 시상식 후원을 철회하기도 했다.

정 작가와 허 번역가도 무대에 올라 반전(反戰)을 외쳤다. 정 작가는 이미 서울 광화문과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반전 시위에 참여한 이력이 있었다. “체포를 각오하고” 참여했다는 안톤 허는 “옆자리 편집자에게 내가 체포되면 영사관에 연락해달라고 했다. 친(親) 이스라엘인 미국에선 그만큼 큰 의미를 지닌 일이었다. 하지만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내년에 또 한 권의 합작품을 낸다. ‘그녀를 만나다’의 영문판 ‘Your Utopia’가 내년 2월 미국, 영국과 호주에서 동시 출간되는 것. 하지만 허 번역가는 ‘저주토끼’의 성과가 재현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Cursed Bunny’를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댓글로 일일이 감사 인사를 하고 행사마다 정 작가와 함께 참가해 책을 알렸어요. 그렇게 기적을 만들었어요. 다음 책도 이렇게 되리라 기대하지 않느냐고요? 전혀 못 하죠. 이런 기적을 어떻게 또 기대할 수 있겠어요.”

한편 “최종후보작들이 너무 굉장해 함께 무대에 올라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축하받을 일이었다. 시상식에서 축하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는 이들은 한국에서의 ‘수상 불발’이라는 표현에 유감을 표했다. “문학은 올림픽도, 수능도 아니지 않냐”는 정 작가는 “‘불발’이라는 표현은 세상 모든 것을 경쟁 관점에서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반영한다. 문학은 점수를 매기는 분야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도록 길들여 있다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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