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맙습니다 - 이일영 어르신
공직사회에 대한 꿈과 희망을 안고 사회복지업무에 첫발을 내디딘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복지업무를 통해 만났던 수많은 이웃 중 최근 유독 인상 깊은 분이 계셔서 소개를 드리려 한다.
지난여름 행정복지센터에 남루하지만 단정한 옷차림에 파란 야구 모자를 쓰신 한 어르신이 성큼성큼 다가오셨다. 우리 동네 기초수급자로 보호를 받고 계신 이일영(87) 어르신이었다. 몇 해 전 노인일자리사업에 반장으로 성실하게 참여하셨던 분이었기에 매우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이었다.
어르신은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10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덤덤하게 내놓으셨다. 7년간 참여했던 노인일자리사업 활동비와 최근 수급자로 선정돼 받은 생계급여를 모았다고 했다. 어르신이 현재 받는 월 생계급여, 기초연금을 합쳐봐야 67여만 원….
다음 날 어르신 댁을 찾아갔다. 한 달 생활비로도 빠듯한데 생활이 어려운 분께서 일반분들도 쉽지 않은 큰 금액을 내놓으셨기에 처음에는 어르신의 건강 상태를 염려했으며, 그 마음이 진심일지라도 어르신의 어려운 삶이 나아지길 바라며 어르신의 마음만 받고 생각을 돌려보고 싶었다.
서둘러 통장 잔액을 확인했고, 1000만 원을 기부하고 남은 통장 잔액은 40만 원…. 본인이 쓸 어느 정도의 여윳돈도 남기지 않으시고 몽땅 내놓으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웃을 향한 선한 마음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자식 된 마음으로 조심스레 몇 번 만류했지만, 어르신의 의지는 분명하고 정확했다.
어르신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하셨다. 또한 본인만의 철학이 “첫째 마음을 비우자, 둘째 욕심내지 말자, 셋째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자”라고 하시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싶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며 “평생소원이자 숙제를 해결한 것 같아 기쁘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일영 어르신은 가정형편도 어려웠었지만, 일찍이 아내와 사별하고 2년 전에는 함께 살던 큰아들마저 먼저 세상을 등지는 등 삶의 여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0년 전에는 위암 수술까지 받는 등 건강마저도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었다. 애당초 노인일자리사업을 시작했을 무렵인 2014년에도 형편과 건강상 기초수급자라는 제도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생활하겠다는 의지로 약 7년간 노인일자리사업에 꾸준히 참여한 것이다. 2년 전 병들었던 큰아들이 사망하였고 둘째 아들도 형편이 넉넉지 않은 데다 어르신은 점차 노쇠해졌기에 더 이상 정부의 지원을 미룰 수 없게 된, 그해 2021년 이일영 어르신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노구(老軀)로 때론 일하는 것이 힘에 부쳤지만 일할 수 있음에 기뻤다는 어르신은 “배고파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을 안다”는 말처럼 고생을 해보니 본인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살아생전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지난 10년간 생활비를 아껴 한 푼 두 푼 모아 온 것을 이번에 기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 많이 봉사하고 희생하시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가진 것 없는 저의 결심, 그리고 행동이 다른 많은 분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그런 세상이 되길 희망합니다.”
평생의 소원이자 숙제를 해결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자유롭다는 이일영 어르신. 돈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되길 바란다는 어르신. 그러면서 자신의 선행이 결코 큰일이 아니라고 겸손의 손사래를 치신다.
안은선 대전 대덕구 법2동행정복지센터 팀장
‘그립습니다 · 자랑합니다 · 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라이프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