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2030엑스포(세계박람회) 유치에 실패했다. 부산시가 도전에 나섰던 2014년 이후 9년,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9년 5월 부산엑스포 유치를 국가사업으로 결정한 뒤 4년 반, 윤석열 정부 들어 지난해 7월 민관 합동 유치위원회 출범 이후 500여 일 동안 기울인 노력을 돌아보면 허탈감까지 느껴진다. 29일 국제박람회기구(BIE) 투표 결과(리야드 119표, 부산 29표, 로마 17표)를 보면 더욱 그렇다. 유치 불발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훈과 성과도 남겼다. 이번 경험을 활용해 2035년 엑스포 유치 재도전에 나설 수 있고, 경제·외교 지평을 주요 국가에서 벗어나 획기적으로 넓힐 계기도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짚어볼 문제는, 국가사업으로 결정하고도 너무 늦게 실질적 유치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보다 1년 이상 늦었다. 정부·기업·지자체가 ‘원팀’ 정신으로 나섰지만 10조 원을 투입한 ‘오일 머니’ 벽은 높았다. 182개 회원국이 동등하게 한 표씩 행사하다 보니 사우디의 지원 약속을 받고 이미 지지 선언을 한 이슬람권과 아프리카·아시아 등지에서 몰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한국 관계자들이 만난 대표단을 바로 뒤에 만나는 ‘방석 뒤집기’식으로 밀착 로비도 전개했다. 유치위나 대통령실, 심지어 언론까지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낙관적 전망에 휘둘린 것은 아닌지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엑스포 유치는 무산됐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이 얻은 성과는 적지 않다. 우선, 부산이 ‘글로벌 허브 도시’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글로벌 스마트센터지수(SCI)에서 부산시는 세계 77개국 중 19위, 아시아에선 싱가포르와 홍콩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인기 여행지로도 급부상했다. 자매·우호 도시도 37개에서 49개로 늘었다. 삼성과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들은 유치전을 통해 아프리카 등지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기업 총수들이 한 번도 가지 않은 나라를 방문, 사업 영역도 크게 넓혔다. 정상급 인사가 수교 이후 처음으로 방문한 나라도 수두룩하다. 막판 일본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도 성과이다.

최근에는 국가 단위의 엑스포보다 세계가전전시회(CES) 같은 기업 단위 전시회가 더 큰 관심을 끄는 추세이긴 하다. 야당은 유치 좌절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고, 유치위는 문제점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평창동계올림픽도 3수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재도전도 검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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