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국가청소년정신건강재단(헤드스페이스) 뱅크스타운 센터를 찾은 청소년이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왼쪽). 헤드스페이스 입스위치 센터 전경(아래).   헤드스페이스 제공
호주 국가청소년정신건강재단(헤드스페이스) 뱅크스타운 센터를 찾은 청소년이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왼쪽). 헤드스페이스 입스위치 센터 전경(아래). 헤드스페이스 제공


■ 가난한 ‘금쪽이’ 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 (4) ‘마음건강 복지’ 선진국은 어떻게 <끝>

14세前 발생한 정신건강 문제
50% 이상은 성인이 돼도 지속
정부, 근본 해결 위해 적극개입

12~25세 대상 ‘헤드스페이스’
심리상담·의료진 연계 서비스
진단명 없어도 무료로 제공돼

중증일 땐 국가보험제도 이용
활동 보조인까지 지원 받아
치료에 지불하는 돈 거의 없어


그래픽 = 권호영 기자
그래픽 = 권호영 기자


시드니 =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호주 정부가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키워드는 ‘조기 개입(Early intervention)’이다. 청소년 자살률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자,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다. 호주 연방정부는 지난 2021년 ‘호주 국가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및 웰빙 전략(National Children’s Mental Health and Wellbeing Strategy)’을 발표하며 조기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정부 제도와 별개로, 호주 연방정부는 비영리단체에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조기 개입한다. 이미 중증의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아동·청소년은 국가장애보험제도(NDIS)를 이용할 수 있다. NDIS에 등록되면 각종 치료비는 물론이고, 휠체어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까지 살 수 있는 예산을 지원받는다.

지난달 31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위치한 웨스턴시드니대 파라마타 캠퍼스에서 만난 박홍재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호주 정부가 정신건강 대책에서 조기 개입을 중시하는 이유는 14세 이전에 발생한 정신건강 문제의 50% 이상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호주 정부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 자살 시도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는데, 지난해만 77명의 만 17세 이하 아동·청소년이 자살하는 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더 깊은 곳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기면서 정신건강 문제엔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주 연방정부는 비영리 시민단체(NGO)로 구성된 프라이머리 헬스 네트워크(PHN)에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호주 금쪽이’들의 정신건강에 조기 개입한다. PHN은 연방정부의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개발해 제공한다. 대표적 예가 헤드스페이스(Headspace)다. 헤드스페이스는 정신건강에 문제를 가진 만 12∼25세 청소년에게 심리상담, 의료진 연계, 가족·교사 교육 등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매년 10만 명의 학생들이 온라인 상담이나 센터 방문을 통해 도움을 요청한다. 호주 연방정부가 2006년 헤드스페이스 센터를 설립한 이듬해 10개소에서 올해 154개소까지 꾸준히 확대돼 왔다.

제이슨 트리도우언 헤드스페이스 CEO는 “진단명이 없어도, 단순히 슬프거나 불안하다는 이유로 얼마든지 올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꾸준히 낮추고 있다”며 “일찍 이상징후를 발견해야 해결할 기회도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헤드스페이스는 호주 연방정부로부터 1년에 2억5000만 호주달러(약 2139억 원)를 지원받고 있다.



커뮤니티센터, 학교, 1차 진료기관(GP) 등 3각 체제는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아동·청소년을 포착하고 전문 의료기관으로 연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GP는 전문의가 아닌 일반 진료 전반을 담당하는 의사다. 박 교수는 “호주 인구의 98%가 GP를 두고 있다”며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의사”라고 설명했다. 애덤 거스텔라 시드니대 심리학과 교수는 “의료 분야에선 GP, 커뮤니티센터·청소년센터에선 사회복지사, 학교에선 상담사 등이 도움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을 발견하고 전문 의료기관이나 PHN 등에 연결해준다”고 했다.

이미 중증의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아동·청소년들은 NDIS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NDIS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지원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로 지난 2013년 만들어졌다. 장애 판정을 받지 않았지만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지원 대상이다. 지난해 기준 실제 이 제도를 이용한 인원은 약 45만 명으로 집계됐다. 예산을 지원받으면, 본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나 재화 등을 자율적으로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거스텔라 교수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환자 역시 삶을 영위하는 데 영구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면 NDIS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제니(가명·16)도 NDIS에 등록돼 1년에 약 2만5000호주달러(약 2100만 원)를 지원받고 있다. 제니의 어머니 김모(61) 씨는 “상담·뇌파·약물·언어 치료는 물론이고 활동보조인까지 NDIS 지원액으로 감당하고 있다”며 “제니의 치료에 드는 돈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치료비가 ‘0원’인 셈이다. 비용 부담이 없기 때문에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중증의 정신건강 문제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마음껏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김 씨는 자신의 의사를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제니를 위해 NDIS 지원금으로 태블릿PC를 사기도 했다. 김 씨는 “호주라는 나라에 너무 고마울 뿐”이라며 “한국에서 살았다면 제니의 정신건강 문제를 발견한 10살부터 지금까지 치료를 이어오지 못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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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권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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