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폐색 腸폐색은 생명 위협 조선왕조 멸망 부른 극강 대립 현 정국도 국가 마비 우려할 판
巨野 입법·탄핵 폭주가 주원인 대통령의 방어적 거부권 속출 몸집에 걸맞은 책임 통감해야
대한민국의 국운이 급속한 쇠퇴 기미를 보이고 있다. 나라에 깊게 드리운 ‘소통폐색(疏通閉塞·communication impasse)’의 짙은 먹구름 때문이다.
소통폐색은 조선의 율곡 이이가 당대의 국정 형세를 진단했듯이, ‘유호무문(龥呼無聞)’ 즉, 두 세력의 양보 없는 극강의 상호 대립 속에서 아우성과 호소만 난무할 뿐, 어떤 말도 서로에게 전혀 들리지 않는 가운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이 꽉 막힌 상황을 말한다. 그는 소통폐색에 함몰된 조선왕조를 ‘토붕지세(土崩之勢)’ 즉, 산사태처럼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는 비극적 형국이라고 통찰했다. 오늘날에도 여야 간의 정쟁으로 인한 소통폐색, 특히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와 탄핵 공세로 국가 기능이 전면적으로 위축·마비되고 있다.
국회는 116개 민생 관련 법안 등 200여 개의 법안 처리에 아예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인데 선거법 개정 논의는 아직 착수도 하지 않고 있다. 대형 인명 사고를 막기 위한 핼러윈방지법안, 주택 관련 고충 완화를 위한 ‘실거주 의무’ 완화 법안 등 민생 법안, 우주항공청법안 등 국가 미래와 관련된 주요 전략산업 법안까지 국회에서 마냥 표류 중이다. 국회가 여야 간 정쟁에 휘말리면서 소통폐색에 함몰된 채 공전(空轉)하는 탓이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국회의 임명동의서 채택 부결로 두 달째 공석 중이며, 후임자 임명은 기약도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의 인사와 행정이 정체되고 있다. 전국 법원에서 오랫동안 판결이 나오지 않는 장기 미제 사건이 폭증하고 있지만, 언제나 이런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지 예측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행정부 역시 소통폐색으로 인한 기능 상실이 극심하다.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 건설사업은 야당이 정쟁 항목으로 낚아챈 이후 추진이 완전 중지됐고, 국회에 제출된 정부 예산안은 거대 야당의 입맛대로 그 원형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당하고 변형된다. 거대 야당은 1일 1건 식으로 탄핵·특검·해임·국정조사를 발의하면서 정권을 위협한다. 장관을 탄핵해 몇 달씩 직무를 정지시키는가 하면, 방송통신위원장과 일선 검사의 탄핵까지 주저 없이 추진한다. 이처럼 정치가 갈등의 해소 아닌 조장에 악용되는 가운데 국가의 입법·사법·행정 기능이 총체적으로 무력화하고 있다.
몸집 크기에 걸맞은 정책·입법 경쟁이 아니라, ‘입법 독주’를 주도하며 매일 같이 탄핵·특검·해임·국정조사를 거론하는 거대 야당 때문에 의회 민주주의는 망가지고 있다. 정치는 야당의 ‘독단적 입법’ 폭주와 대통령의 거부권 사이에서 맞짱 대결 즉 극심한 소통폐색으로 변질됐고, 국정의 파탄과 국민의 고통만 키워가는 중이다.
‘사회’에서의 소통폐색 역시 갈등과 그 비용의 극대화를 낳는다. 한 예로, 학생의 ‘인권’ 대 교사의 ‘교권’ 사이의 양보 없는 싸움이 극단으로 치닫는 가운데 ‘교실’은 무너지고 양자 사이 상호 조정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서울 시내에 불법으로 설치된 천막 하나를 구청이 철거하는 데만 10년씩이나 걸렸다는 보도까지 나올 만큼 사회적 소통폐색은 심각한 상태다.
갈등은 많은 비용을 청구한다.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고,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연간 수백조 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이처럼 국정도, 사회질서도, 법치도 모두 율곡이 말한 대로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소통폐색에 따라 원활한 국가 운영이 무력화하는 양상은 우리의 비참한 관습이다. 사회 전반에 갈등과 반목만 깊어지고, 국가의 주요 쟁점은 해결 없이 방치, 누적되고 있다. 혈관폐색이나 장(腸)폐색이 생명을 위협하듯이 소통폐색에 빠진 정치는 국가의 국정 조율 능력과 통치력(governability)을 무너뜨려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
소통폐색의 해소에 국가의 장래가 달렸다. 거대 야당은 정권을 끌어내려 그 반사이익으로 재집권을 도모하는 파괴적 방식에 집착하지 말고, 건전한 정책 경쟁을 통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건설적 수단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운의 쇠퇴 아닌 도약에 기여하는 책임정치와 수권 정당이 갈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