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노동자를 본 뜬 동상이 일본인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30일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안철상)는 김운성, 김서경 작가 부부가 김소연 전 대전시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김 씨 부부가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은 확정했다.
대법원은 "(김 씨 부부에 대한 비평은) 통상적인 어휘의 의미나 전후 문맥 등 전체적인 흐름, 사회 평균인의 지식이나 경험 등을 고려하여 그 표현의 의미를 확정할 경우, 사실의 적시가 아닌 의견의 표명이나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한 의혹의 제기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적시된 사실의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그 내용이 진실하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위법성이 없다"며 "이 사건 노동자상은 공적 공간에 설치되어 그 철거 여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일제 강제 징용과 관련된 공론을 이끌어낸 조각상이라는 점에서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고 피고들로서는 위 발언 당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설시했다.
김 씨 부부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의뢰를 받아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해 2016년 8월 일본 교토의 단바망간기념관에 설치했다. 이후 양대 노총과 시민단체 주도로 노동자상 설치운동이 시작돼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 용산역, 제주, 부산, 대전에 김 씨 부부가 제작한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이에 김소연 전 의원은 2019년 8월 페이스북과 보도자료 등을 통해 "서울 용산역, 대전시청 앞 등에 설치된 헐벗고 깡마른 징용 노동자 모델은 우리 조상이 아니고 일본 홋카이도 토목공사 현장에서 학대당한 일본인"이라며 "일본인을 모델로 만들고 우리 조상이라 말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이우연 연구위원 역시 2019년 3월 자신의 SNS에 "노동자상 모델은 1925년 일본 홋카이도 토목공사장에서 강제 사역하다 풀려난 일본인"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 부부는 해당 주장이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각기 다른 재판부에 배당된 1심 판결은 엇갈렸다. 김 전 시의원에 대해서는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반면 이 연구위원에 대해서는 "피고의 발언은 원고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며 김 씨 부부에게 500만 원씩 총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 역시 다른 판결을 냈다. 김 전 시의원에 대해서는 "피고의 이 사건 발언들은 원고들을 그 피해자로 특정할 수 있는 단정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이자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른 허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며 위자료 2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연구위원 사건을 담당한 항소심 재판부는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1심을 파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어떠한 표현이 사실의 적시인지 의견의 진술인지는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나 전후 문맥 등 전체적인 흐름, 사회 평균인의 지식이나 경험 등을 고려하여 그 표현의 진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는 법리를 재확인했다"며 "특히 예술작품에 대한 개인적·심미적 취향의 표현이나 특정 대상과 비교하는 등의 비평은 그 자체로 인신공격에 해당하여 별도의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명예훼손 행위로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명시했다"고 했다.
이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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