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제작과 방송 환경이 바뀌면서 ‘시즌제’가 자리를 잡았다. 나박김치가 시즌을 달리해서 다뤄야 할 만큼 중요한 음식일까 싶지만 한번 다룬 주제를 다시 다뤄야 할 이유가 생겼다. ‘맛의 말, 말의 맛’의 열혈 독자께서 꼭꼭 눌러 쓴 글씨로 편지를 보내와 이전 글의 오류를 지적하며 당신의 의견을 피력해 주셨다. 요약하자면 나박김치의 ‘나박’은 나박나박 썰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재료인 무의 옛 이름이 ‘나복(蘿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복’의 한자는 지극히 어렵고 이 식물을 가리키기 위해서만 쓰인다. 나복이 무의 한자어로 사전에도 올라 있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한약방을 제외하고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 식물의 고유어는 15세기 문헌에서도 발견되니 이 식물의 이름을 굳이 어려운 한자로 쓰고 불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복이 무를 가리키니 이를 주재료로 쓴 김치가 ‘나복김치’일 가능성이 있고 첫음절의 모음에 이끌려 ‘나박’이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관건은 이 음식을 만든 이들과 먹는 이들의 마음이다. 이들이 먹물깨나 든 사람들이어서 한자나 한자어를 잘 아는 이들이었다면 나복김치라고 이름을 지을 법도 하다. 이 음식을 ‘무김치’라고 하는 이들이 있으니 뜻도 충분히 통한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졌을 때 허구가 가미되기 마련인데 드라마만 본 이는 허구를 사실로 믿을 가능성이 있다. 나박김치를 둘러싼 이야기도 이와 유사할 수도 있다. 옛날 사람들은 나복으로 담근 김치로 이해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재료를 나박나박 썬 김치로 이해할 수도 있다. 먼 훗날 ‘나복’이란 말이 아예 쓰이지 않게 되면 모든 사람이 나박나박 썬 김치로만 이해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시즌과 시즌 사이의 휴식기와 비슷하다. ‘나박’을 무와 관련짓는 시청자와 써는 모습으로 판단하는 시청자가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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