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2월 따듯한 기후로 인해 눈이 거의 녹아 있는 프랑스 알프스 산맥 최고봉인 몽블랑의 한 스키장에서 사람들이 눈썰매를 끌고 걸어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2020년 2월 따듯한 기후로 인해 눈이 거의 녹아 있는 프랑스 알프스 산맥 최고봉인 몽블랑의 한 스키장에서 사람들이 눈썰매를 끌고 걸어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 Global Window

온난화로 눈이 비로 바뀌어 내려
1973년 이후 적설량 2.7% 감소

흰눈 사라져 태양열 반사율 하락
대기 온도 끌어올려 악순환 계속

겨울철에 쌓인 눈은 저수지 역할
눈녹은 물 이용하는 20억명 위험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지구에 눈이 사라진다면?’

미국 할리우드 고전 영화 ‘러브스토리’나 전 세계에서 3억5900만 달러(약 4660억 원)의 흥행이익을 거둔 ‘나 홀로 집에 2’를 보면 눈 덮인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주 배경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현재 뉴욕시민들은 센트럴파크에 눈 쌓인 모습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4일(현지시간) 기준 센트럴파크에 1인치(2.54㎝) 이상의 눈이 측정된 지 2년 가까운 658일이나 지났기 때문이다. 이는 1998년 기록된 383일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기록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센트럴파크에는 해마다 평균 24인치가량의 눈이 쌓였는데 지난겨울에는 한 시즌 내내 2.3인치가 내리는 데 그쳐 1869년 적설량 측정이 시작된 이래 153년 만에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눈이 사라지는 곳은 뉴욕만은 아니다.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미시간대 연구팀은 지난 6월 과학저널 네이처에 게재한 연구결과에서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히말라야산맥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고산지도에서 최근 강설량이 줄어드는 대신 강우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발 8848.86m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이 대표적이다. 6월 1일부터 10일까지 에베레스트산 일대 강수량은 245.5㎜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75%가 비였다. 지난해 6∼9월 측정된 강수량에서 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32%에 불과했다는 점을 참작하면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지구온난화로 전 세계 곳곳에서 눈이 비로 바뀌는 현상이 가속하면서 겨울철이나 고산지대에서도 더는 눈이 내리고 쌓이는 모습을 목격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온난화로 중위도 지역에 눈 없는 겨울 온다 = CNN에 따르면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지난달 15일 ‘10월 지구 기후평가’ 보고서를 통해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지구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강수 패턴이 눈에서 비로 바뀌면서 전 세계에서 강설량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10월 북반구에서 눈으로 덮인 면적은 1991∼2020년 평균치보다 약 45만㎢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알래스카 국립기상청 소속 기후과학자 브라이언 브렛슈나이더가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국(C3S)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973년 이후 전 세계 연간 강설량은 2.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는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결국 열역학 법칙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눈이 비로 바뀌게 될 것”이라며 “잠시 상황을 모면할 수 있고 일부 추세를 숨길 수는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열역학 법칙이 승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단기적으로는 지난해 12월 미 뉴욕주에서 발생한 1.2m 규모 폭설처럼 갑자기 극심한 겨울 폭풍이 불어닥칠 수 있지만 지구 온도가 따뜻해지면 결국 강설량은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강설량 감소는 전 세계 인구 대부분이 거주하는 북반구의 중위도 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중위도는 고위도와 비교하면 태양이 더 직접 내리쬐는데 차량의 햇빛가리개 같은 역할을 하면서 태양의 빛과 열을 우주로 반사하던 흰 눈이 사라지면서 더 많은 햇빛이 지면에 흡수되고 결국 대기 온도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50년간 강설량 감소는 로키산맥을 비롯한 미국 서부지역에서 가장 극심하게 나타났다. 강설량 데이터를 수집한 미 서부 지역의 90% 이상에서 눈이 줄어들었다. 더 큰 문제는 연평균 강설량보다 연간 눈 내리는 날수가 더 가파르게 줄었다는 점이다. 이는 적은 날에 많은 눈이 집중적으로 내리는 극단적 폭설의 신호일 수 있다. 저스틴 맨킨 다트머스대 지리학과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극심한 폭설이 발생할 가능성은 실제 증가하고 있다”며 “대기가 가열되면서 수분을 저장하는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적은 눈으로 수자원 관리해야 하는 난제 부닥쳐 = 강설량 감소가 전 세계 물 공급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눈이 비로 바뀌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내리는 눈이 줄어들면서 실제 일부 지역에서는 물 부족 우려가 점차 심화하고 있다. 맨킨 교수의 2015년 연구에 따르면 녹은 눈에 수자원을 의존하는 전 세계 인구는 20억 명에 달하고 이들은 최대 67%까지 강설량이 줄어들 위험에 처해 있다. 지역적으로는 히말라야산맥의 눈 녹은 물에 의존하는 남아시아 지역을 비롯해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 지역, 아틀라스산맥 기슭의 모로코 같은 북아프리카 지역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강설량 감소에 따른 물 부족을 완화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지역·국가 단위의 장기적인 수자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이다.

제시카 런드퀴스트 워싱턴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겨울 동안 쌓인 눈은 자연 저수지처럼 작용해 습도가 높은 시기에는 물을 눈으로 저장했다가 물을 구하기 어려울 때 눈 녹은 형태로 방출하기 때문에 물 공급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설량 감소에 따른 물 공급 위협은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미국 서부처럼 우기와 건기가 극단적으로 반복되는 기후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런드퀴스트 교수는 “캘리포니아는 여름에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눈 녹은 물이 생태계와 농업, 도시 등 건기에 물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7년 연구에 따르면 겨울에 쌓인 눈은 건조한 미 서부지역 물 공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이 커지는 시나리오하에서 2100년까지 미 서부지역의 적설량은 3분의 1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맨킨 교수는 CNN에 “여기에 만병통치약은 없다”며 “문제의 범위를 이해하고 파악한 후 구상할 수 있는 다양한 규모의 해결책·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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