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심해지는 미·중 간 갈등 및 패권 경쟁은 어떤 면에서는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며, 궁극적인 결말 역시 쉽게 예측할 수 있다. 2001년 831억 달러에 불과했던 미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 20년간 계속 늘어 2018년에는 4000억 달러를 넘었으며, 코로나 기간이던 2022년에도 3892억 달러를 기록했다. 양국 간 무역수지 불균형이 더욱 심해진 것은, 중국은 전체 무역 흑자 중에서 대미 무역 흑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초과하는 반면 미국의 대중 수출의존도는 10%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국 간 경쟁이 심해질수록 중국의 협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지난 100년간 세계 경제를 주도했던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이러한 도전을 계속 묵과할 수가 없다. 재래식 무기를 중심으로 구축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체제를 수호하던 냉전시대와는 달리,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강대국들 간의 패권 경쟁에서는 과학기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심각한 불균형에 빠진 미국으로서는 적어도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중국이 새로운 패권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다. 하지만 세계적 강국인 미국도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을 혼자의 힘으로 견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미국을 중심으로 공동의 이해관계에 있는 국가들과 연합해서 전방위적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아시아에서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결성해 연합 세력을 구축했고, 유럽과는 EU·미국 기술위원회(TTC)를 결성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미국·아프리카 지도자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북미와 남미에서는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과 경제 번영을 위한 미주 파트너십을 결성해 중국에 대한 전방위 포위망을 구축했다.
개별 산업 차원에서는 ‘칩 4’ 같은 반도체 협정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국적을 기준으로 기업들에 차별적 규제를 가한다. 최근, 2차 전지에 대해 중국 지분이 25% 이상인 합작회사까지 포함해 세액공제 혜택을 차등 적용하는 것도 대표적인 예다. 강대국들은 새로운 국제규범(International Norms)을 만들거나, 국가들을 연합해 진영을 만드는 일들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경험하는 이런 현상들은 2011년 국회에서 통과시킨 한미자유무역협정(FTA)처럼 FTA가 국가 간의 교역을 주도하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FTA 체제에서는 국가 간 경제 교류를 자유롭게 활성화해서 두 나라 경제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강화하기 위한 경제 논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강대국들 간 패권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는 글로벌 관점에서의 군사 및 지정학적 논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 FTA보다 경제안보 관점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IPEF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지정학적 위험의 관점에서는 예고 없이 새로운 규제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며, 같은 진영이 아니면 시장이 갑자기 작아지거나, 자원 민족주의와 같은 움직임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이 위협받을 수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군사 및 지정학적 위험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글로벌 경영 전략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