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Leadership - 1년 8개월 재임 마무리하는 추경호 부총리
거시·정책·금융·세제·예산
경제의 ‘파이브툴 플레이어’
작년 윤 정부 첫 예산 처리때
정치권 소통으로 갈등 조율
‘재정건전성 확보’ 철학 확고
내년 예산 선심성 증액 요구에
지출 증가율 2.8% 사수 총력
‘중장기 로드맵 불분명’ 평가도
‘윤석열 정부 1기 경제 사령탑’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년 8개월여간의 재임을 마무리하고, 지역구(대구 달성군) 복귀를 앞두고 있다. 재선 의원인 추 부총리가 취임한 직후부터 우리나라 경제는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촉발한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 여파로 지난해 하반기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2009년 이후 처음으로 1400원대를 넘어섰다. 국내 물가상승률도 6%대를 돌파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를 비롯한 ‘내우외환’ 속에서 글로벌 경기침체와 주력품목인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곤두박질치는 등 추 부총리를 주축으로 하는 윤석열 정부 1기 경제팀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추 부총리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포함해 거시경제·경제정책·금융·세제·예산을 아우르며 민간과 시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마련하고, 지난 정부의 확장 재정에서 건전 재정으로 정책기조를 전환하는 등 윤 정부의 국정철학을 성실히 이행했다는 평가가 11일 기재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파이브툴 플레이어’(Five-tool Player) = 야구에서는 평가 기준인 5가지(타격의 정확성·파워·주력·수비력·송구력) 능력을 전부 갖춘 야수를 파이브툴 플레이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재부에서 거시경제·경제정책·금융·세제·예산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추 부총리는 파이브툴 플레이어로 비유할 수 있다. 그는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재정경제원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에서 주무 서기관을 거쳤고, 이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과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등을 맡으며 거시정책과 금융정책을 두루 섭렵했다. 추 부총리에 대해 기재부의 한 국장은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데다 재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세제와 예산을 깊이 있게 공부하면서 기재부의 모든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췄다”면서 “전 분야에 걸쳐 철학과 소신을 갖춘 유일무이한 경제부총리”라고 평가했다.
◇“나를 ‘추경불호’라고 불러달라” = 경제부처의 요직들을 거쳤던 추 부총리의 철학과 소신은 확장 재정을 내세우는 야당으로부터 재정 건전성을 사수하려는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 들어 극심해진 경기침체로 인해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줄기차게 요구했었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올해 1월부터 30조 원 규모의 추경 편성 등 강도 높은 재정 지출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추 부총리는 매번 추경 편성 가능성을 단호하게 일축했다.
지난여름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발생하자 수해 복구를 위해 추경 편성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도 추 부총리는 자신의 이름을 활용해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다. 지난 7월 제주 서귀포시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개회식 강연에 나선 추 부총리는 “주변에서 이름이 추경호라 추경을 좋아할 것 같은데 왜 추경을 하지 않냐고 한다”면서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세금을 더 걷으면 기업들이 더 어려워지고 나라 경제가 위험에 빠질 수 있으니 그냥 나를 ‘추경불호’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추 부총리가 추경 편성을 극구 반대하는 배경에는 ‘나랏빚 1100조 원’이라는 재정 상황 때문이다. 확장 재정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 5년간 총 10차례 추경 편성으로 나랏빚은 2017년 660조 원에서 지난해 1068조 원으로 400조 원가량 불어났다. 재정 당국 관계자는 “현역 의원인 추 부총리는 경기부양을 이유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재정 지출을 늘릴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나랏빚은 미래세대에 부담이 된다는 점을 견지하며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고 추경 가능성을 불식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브리드(관료+정치인) 리더십 = 여소야대 국면에서 추 부총리는 현역 의원이라는 점을 적극 활용해 주요 정치인들을 끊임없이 접촉하며 정부·여당과 야당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고 경제현안 등을 처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4일 새벽 국회 문턱을 넘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처음 편성한 올해 예산(638조7000억 원)이 대표적이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등으로 첨예하게 맞서면서 여야는 지난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가장 늦게 올해 예산을 통과시켰다. 정권 교체 첫해였던 만큼 여야 대립은 극렬했으나 결국 법인세를 과세표준 구간별로 1%포인트씩 세율을 인하하고,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을 위한 예산은 3525억 원 증액 편성하기로 하며 올해 예산은 극적으로 타결됐다. 추 부총리가 막전막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면 헌정사 최초로 ‘준예산’(예산이 통과되지 못했을 때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하는 제도)이 시행될 뻔했다는 게 관가와 정치권의 평가다.
현재 여야는 내년도 예산안(656조9000억 원)을 놓고 연구·개발(R&D) 예산 증액 등 주요 쟁점에 대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내년 총선을 의식해 선심성 사업 증액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5년 재정통계 정비 이후 19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설정한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2.8%)을 사수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추 부총리가 내년도 예산안까지 처리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기재부 내에선 지배적이다. 기재부 내 국장급 공무원은 “추 부총리가 현역 의원이어서 주요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메시지를 내고 있다”면서 “추 부총리가 아니었다면 건전 재정 기조를 사수하려는 기재부가 정치권의 포퓰리즘성 증액 요구를 막을 사람도, 방법도 없다”고 설명했다. 추 부총리는 지난 7일에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총지출액에서 순증액 되는 부분은 수용할 수 없다”면서 “야당에서 현금 살포성·선심성으로 무리한 증액 요구를 하는 부분도 있기에 현재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중장기 전략 부재 지적도 = 추 부총리가 이끌어온 경제팀 1기의 공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와 국가채무, 집값 폭등, 과도한 규제, 생산성 저하 등 문재인 정부가 남긴 불리한 유산에도 고금리·고물가·고유가 등 이른바 3고 위기를 잘 극복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수출과 경제 성장률을 회복세로 돌려세우는 등 백척간두와 같은 경제 상황을 잘 헤쳐 나가도록 한 것은 다행이지만, 한국 경제의 앞날에 도사리고 있는 ‘저성장’의 함정을 극복할 근본적인 해법 제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는다. 중·장기적인 윤석열 정부의 국가 경제전략과 로드맵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바통을 이어받을 2기 경제팀이 풀어야 할 숙제로 보인다.
직원들 수시로 만나고 애로사항 들어… 기재부 ‘닮고 싶은 상사’ 1위 뽑혀
■ 뛰어난 소통 능력 ‘본보기’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1월 기재부 내 ‘닮고 싶은 상사’ 투표에서 최다 표를 얻으며 베스트 상사의 영예를 얻었다. 현직 부총리가 베스트 상사로 뽑힌 것은 박근혜 정부 당시 최경환 부총리 이후 7년 만이다. 기재부 노동조합이 지난 2004년부터 19년째 실시하는 닮고 싶은 상사 투표에서는 리더십·능력·인격이 뛰어난 간부가 주로 뽑힌다. 기재부 내 한 고위공무원은 “추 부총리는 직원들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애로사항을 들으려고 한다”며 “현재 기재부는 인사적체가 극심한데 추 부총리의 수완으로 기재부 내 1급이 통계청·관세청·조달청 등 외청장으로 영전하면서 조직의 활력을 더했고, 그런 이유로 추 부총리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추 부총리의 뛰어난 소통능력은 기재부 리더로서뿐만 아니라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도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등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속도를 빠르게 가져가면서 국내 외환·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추 부총리는 한국은행 총재(이창용)·금융위원장(김주현)·금융감독원장(이복현) 등과 함께 일요일마다 ‘F4(Finance 4)’ 회의를 통해 국내외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같은 추 부총리의 소통능력은 후배들에게도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5일 기자 간담회에서 “추 부총리는 존경하는 선배이고, 멘토로 생각하는 분이기 때문에 추 부총리의 장점을 잘 따르겠다”며 “기자들과의 소통도 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추 부총리 프로필
△1960년생 △대구 계성고 △고려대 경영학과 △행정고시 25회(1981년)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및 금융정책과장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재부 1차관 △국무조정실장 △20·21대 국회의원(대구 달성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전세원 기자 jsw@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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