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지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나전으로 장식한 작은 합으로 모자합(母子盒)을 구성하는 자합(子盒) 중 하나이다. 모자합은 큼직한 원형이나 사각형 모합(母盒) 안에 네 개의 자합이 한 개의 둥근 자합을 둘러싼 꽃 형태로 구성된다. 나전칠기는 불화, 청자와 함께 고려 시대 예술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예품으로 완형(完形)은 세계적으로 20여 점이 남아 있고 국내에는 4점 정도가 확인된다.
이 나전합은 고려 나전칠기의 주요 무늬인 국화넝쿨무늬로 빼곡하게 장식돼 있다. 꽃과 넝쿨잎무늬에는 자개와 복채(伏彩)한 대모(거북 등딱지를 얇게 갈아 투명하게 가공한 재료)가 사용됐고, 넝쿨 줄기와 각 면의 테두리에는 금속선을 사용하고 있어 고려 나전칠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높이 3.0㎝, 너비 9.8㎝, 폭 7.0㎝의 작은 크기이지만 나전, 대모, 금속선 등의 재료가 섬세한 장식 기법과 함께 어우러져 고려 나전칠기 특유의 격조 높은 아름다움이 반영된 수작이다.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도경’에 고려의 나전칠기를 세밀가귀(細密可貴·섬세하고 정밀하니 귀하다 할 만하다)라고 평한 것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모합과 자합을 모두 갖춘 합이 고려 시대 공예품으로는 상감청자로만 남아 있을 뿐, 나전칠기는 아직까지 온전한 형태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자합의 경우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보스턴박물관 그리고 일본 사찰의 소장품 등 3점이 확인되고 있으며, 국내에는 이 자합이 유일하다.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에서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이 유물이 처음 공개된 후 2020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환수해 우리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부디 이 자합의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잘 보존돼 있다가 어느 날 함께 만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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