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맙습니다 - 엄마(이명숙)의 ‘셋째 아들’ 가수 이찬원
엄마 손을 잡고 스태프 안내에 따라 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둑한 터널 구간을 지나니 별세계였다. 여러 개의 핀 조명이 비추는 무대, 객석을 그러데이션처럼 채우는 핑크빛 물결, 관객들의 수런거리는 소리, 밤하늘의 인공위성처럼 반짝이는 응원봉까지. 입구 가까운 곳에 엄마의 자리가 있었다. 복도 안쪽으로 두 칸 들어간 좌석이었다. 엄마를 자리에 모셔다드리고, 얼마 안 돼 옆자리 주인이 오는 바람에 나는 2층 객석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로부터 한 달 전, 사무실에서 한창 일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무래도 아들이 못 미더워 전화를 거신 모양이었다. 엄마 목소리엔 열여덟 소녀의 설렘과 생기가 묻어났다. 벌써 여러 번 말했는데도 매번 처음 말하는 것처럼. 나는 벽시계를 보고 그것 때문에 점심도 거른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엄마 입장에선 아들 점심 따위 안중에도 없었겠지만.
결전의 시간이 왔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어서 걱정되진 않았다. 광주, 대구, 대전 콘서트 티켓 예매에 성공했었기 때문이다. 최근 전적 3전 3승인 나는 프로게이머인 양 과장되게 손을 풀고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엄마가 괜히 호들갑을 떠신다고 생각하면서.
엄마는 차곡차곡 개켜진 기다림을 풀어헤치듯 “성공했어?”라고 물었고, 나는 담배 연기 내뿜듯 한숨을 쉬고, “클릭하는데 자꾸 좌석이 사라져서…”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가 발을 동동 구르실 모습이 보지 않아도 훤했다. 분명히 빈자리가 생길 거라는 말로 안심시켰지만, 엄마는 “우리 찬원이 콘서트에 꼭 가야 하는데…”라는 말만 반복했다. 다행히 며칠간 틈나는 대로 예매 사이트에 들어간 끝에 겨우 두 자리를 예매했다. 엄마는 1층, 나는 2층으로 헤어져야 했지만.
엄마가 연예인 팬이 될 줄이야. 오래전 비 팬이었던 친구분을 따라 콘서트에 간 적은 있다. 그땐 가수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니. 그랬던 엄마가 변한 건 순전히 내 탓이다. 나는 중증 아토피를 앓았다. 철없던 둘째 아들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엄마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졌다. 한동안 집안 분위기는 무겁고 낮았다. 어느 날은 태풍 전야의 해안가 같았고 또 어느 날은 태풍이 휩쓸고 간 어촌 같기도 했다.
한번은 퇴근했더니 엄마가 소녀처럼 웃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웃음을 되찾아 준 건 한 종편 채널의 ‘사랑의 콜센타’였다. 엄마는 ‘진또배기’를 구성지게 부르는 이찬원을 원픽으로 꼽았다. 트로트를 가장 잘 부르는 데다 젊은 사람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병간호하면서 이찬원 노래로 해진 마음을 달래고 몸을 추슬렀다. 그의 노래는 엄마에게 즉효 약이자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찬원은 우리 집 셋째 아들이다.
셋째의 앙코르가 끝날 듯 말 듯 이어졌다. 막이 내리고 1층으로 내려가려면 꽤 오래 걸릴 것 같아 이석했다. 1층 로비엔 남편과 자녀로 보이는 인파로 북적였다. 아내와 엄마만 들여보내고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조금 있다 출입문이 열렸다. 핑크빛 물결 사이에서 엄마를 발견했다. “재밌었어?”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웃기만 했다. 넓은 곳으로 나와서야 훈장인 양손을 보이면서 말했다. “엄마 찬원이랑 악수했어!” 공연 중 1층 무대 뒤에서 깜짝 등장해 객석 사이 복도를 내려오면서 몇몇 팬들에게 악수를 해줬단다. 그 소수에 로또처럼 당첨된 것이다. 엄마에겐 잊지 못할 선물이 된 듯했다. 그날 밤 엄마와 나는 다른 팬들과 마찬가지로 셋째의 퇴근하는 모습까지 지켜봤다.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서서 바라보다 휴대전화를 든 손을 천천히 흔들었다.
둘째 아들 김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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