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남자의 클래식 -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1번

‘겨울날의 환상’ 부제처럼
특유의 애수·감수성 가득

“여러 면에서 미성숙하지만
나의 어떤 다른 작품보다
본질적으로 우수하다 자부”


쓸쓸한 음악을 듣는다는 건 그저 쓸쓸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쓸쓸함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우울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극복할 용기를 갖게 해준다.

겨울엔 차가운 겨울 음악과 함께 겨울의 쓸쓸함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 새하얀 눈길을 걷듯 차분한 맘으로 듣기 좋은 작품이 있다. ‘겨울날의 환상’이라는 부제를 지닌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1번이다.

‘겨울날의 환상’이라는 부제답게 이 작품은 차이콥스키 특유의 애상과 애수로 가득하다. 마치 러시아의 눈 덮인 겨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청년 차이콥스키의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다. 총 4악장의 교향곡으로 특히 앞의 두 악장에는 <1악장, 겨울날의 환상들> <2악장, 황량한 땅, 안개의 땅> 등 별도의 표제가 붙어 있어 듣는 이에게 음악적인 정취를 더함과 동시에 풍부한 상상력을 이끌어 낸다. 또한 작품 위로 흐르는 러시아의 민족적 선율엔 차이콥스키 특유의 애수와 감수성이 더해져 겨울날 러시아의 땅과 하늘을 황량하고도 몽환적으로 그려낸다.

차이콥스키는 전 생애에 걸쳐 총 6개의 교향곡을 썼는데, 보통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하면 원숙기에 작곡된 제4번, 제5번, 제6번이 유명하고 그중 가장 유명한 교향곡은 단연 그의 유작인 ‘제6번, 비창 교향곡’이다. ‘교향곡 제1번, 겨울날의 환상’은 그에 비하면 원숙미는 덜할 테지만 막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한 청년 차이콥스키가 젊은 날의 감수성과 열정으로 빚어낸 수작 중의 수작이다.

186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차이콥스키는 그 이듬해에 이제 막 문을 연 모스크바 음악원의 화성학 교수로 위촉된다. 당시 모스크바 음악원의 설립자는 차이콥스키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시절 스승이었던 안톤 루빈시테인의 동생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이라는 인물이었는데, 아마도 그가 이제 음악원의 교수로 전업 작곡가의 첫걸음을 내디딘 차이콥스키에게 첫 교향곡의 작곡을 권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차이콥스키는 1866년 봄, 드디어 작곡가 인생에 있어 첫 대작이 돼 줄 ‘교향곡 제1번’의 작곡에 착수한다. 하지만 아무리 차이콥스키라 할지라도 인생 최초의 대작, 스케일이 큰 교향곡을 작곡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신임 교수로서 음악원의 업무와 함께 병행했기에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차이콥스키는 실제로 작곡하는 내내 두통과 불면증을 달고 살았을 정도로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으나 결국 그해 여름 첫 교향곡을 완성해 낸다. 고생 끝에 작곡된 작품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음악원의 설립자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에게 헌정됐고, 그의 지휘 아래 1868년 2월 모스크바에서 초연됐다. 그리고 6년 뒤인 1874년 교향곡은 개정 작업을 거치게 되고 최종 개정 버전은 1883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막스 에르트만 스되르퍼의 지휘로 초연됐다.

이 작품은 차이콥스키가 특별한 열정과 애정으로 탄생시킨 작품이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봤던 그의 동생 모데스트는 “형의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도 많은 노력과 고생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차이콥스키 본인도 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직접 드러낸 바 있다. 그는 1883년 자신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러 면에서 미성숙하지만 본질적으로 나의 그 어떤 다른 작품보다 내용이 풍부하고 우수하다고 자부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겨울날의 환상’ 중 1악장

차갑고 광활한 러시아의 대지를 플루트와 바순이 민족적인 선율로 노래하면 겨울날의 애수를 가득 머금은 클라리넷이 주제를 이어받는다. 차갑지만 쓸쓸하지만은 않은 겨울날의 풍경을 극적으로, 또 낭만적으로 가득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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